어머니 유품 정리하다 알게된 비밀
부엌식탁서 몰래 영어와 수학 공부
누군가의 부모로 사느라 포기한 꿈
부모님의 ‘제2의 청춘’ 응원해보자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가득 찼다. 벌써 2021년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

가끔 현실의 삶이 힘들고 답답해지면, 난 시골에 위치한 시댁을 찾는다.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머니는 며느리 좋아한다고, 텃밭에서 바로 상추를 따고, 호박을 따며 배고프겠다면서, 뚝딱 어머니표 된장찌개를 만들어 주신다! 힘이 불끈 나는 한끼의 보약이 아닐 수 없다.

이 곳에 오면 5년 전 선산에 잠들어 계신 엄마 생각이 난다. 아직도 엄마를 향한 그리움의 잔상은 곳곳에 내재돼 있다.

추석을 3일 앞두고, 돌아가신 엄마. 늘 곁에서 든든한 천군만마가 되어주던 어머니라는 존재의 부재는 참 컸다.

방송일 하느라 제때 밥을 못 먹는 게 늘 안쓰럽다며, 어느 시간에 와도 따스한 밥 한 공기를 뚝딱 차려주던 사람. 힘들다고 투덜거리며 언제라도 전화를 해도 늘… 힘내라고 다독거리던 영원한 내 편,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리고 엄마의 꿈과 비밀에 대해 알게 된 건…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부터였다.

충남 부여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유난히 공부도 잘하고 그림을 잘 그렸던 엄마의 꿈은, 피카소를 꿈꾸던 위대한 화가도, 멋진 대학 교수도 아닌…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꿈을 그리는 미술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가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이 시대의 엄마들이었으리라. 그리고 엄마는 가족 아무도 모르게 50여 년 세월이 지나서야 다시 '학생'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비밀. 엄마는 늘 부엌식탁에서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남모르게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도심에서는 중년의 여중생, 황혼의 여고생. 만학도인 대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시 엄마는 서구의 한 대안학교에 다니고 계셨다.

책가방을 메고 바쁜 걸음을 내딛는 수많은 엄마들을 볼 수 있는 곳. 그녀들을 뒤따라 들어가면 곧 펼쳐지는 익숙한 교실 풍경.

그 곳에는 수십 년 동안 혼자 눈물로 가슴앓이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비밀이 있었다. 평균 나이 60세. 고단했던 세월을 말해주는 주름을 안고 이제 다시 학교에 들어선 흰머리가 희끗한 우리네 엄마들은 이곳에서만큼은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다는 17세 여고생으로 변신하며 공부에 열중했던 것이다.

누군가의 누나와 딸로, 시간이 지나 다시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 살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많은 어머니들의 배움터인 이곳에서, 우리 엄마역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 행복한 꿈을 꾸셨고, 당당히 졸업을 하며, 대학생으로의 미래를 그리셨던 것이다.

필자 역시 지역방송에서 어르신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의 그 시절 회한과 아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매주 직접 마주하게 된다. 더 못해줬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직까지 힘들게 사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어르신들 마음 깊이 늘 사무쳐 있다.

어르신들께 꿈에 대해 여쭤보면 한결같이 이 말씀을 하신다 "우리 자식들… 손자들 잘 되고 건강한 거지… 나는 그거면 행복해."

지난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 눈물부터 쏟아내는 게 우리네 엄마들이다. 언젠가 자식들이 가지고 온 가정통신문 속 부모 학력란을 앞에 두고 마음이 철렁했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가슴앓이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의 꿈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내리사랑에 너무 익숙해져서 나만, 그리고 내 아이만을 생각하고 있진 않는가?

교복이 부러웠던 17세, 갈래머리를 하고, 연필을 쥐고 책가방을 메는 일이 소원이었던 여학생, 졸업장을 갖고 싶었던, 그래서 조금은 당당하고 싶었던 엄마의 꿈. 더 열심히 노력해 다음엔 여대생이 되겠다고 수줍게 웃는 중장년의 여학생들. 배움의 길을 통해 다시 꿈을 꾸는 우리네 엄마들이 보내는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응원하며, 이제 우리 부모님들의 내일의 꿈을 응원해 본다.

"어머니! 아버지! 자식들 걱정은 이제 그만 하시고, 제2의 청춘의 시간을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배우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그거면 행복해요 우리도."

이희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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