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택 청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전국적으로 트로트 열기가 뜨겁다. 장수 프로그램인 가요무대를 비롯해 뽕숭아학당, 트롯파이터, 내일은 미스트롯, 트로트의 민족, 사랑의 콜센타, 트롯 전국체전, 트롯매직유랑단, 트롯신이 떴다, 더트롯쇼 등 비슷비슷한 듯하지만 조금씩 다른 명칭의 프로그램만 줄잡아 10여 개가 넘게 검색된다. 좀 보태 말하자면 채널 선택권이 좁아진 '트로트 홍수 사태'인 것이다.

대한민국을 트로트 열풍에 휩싸이게 한 프로그램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었다. '미스터트롯'의 우승자가 발표되는 순간 800여만 명의 시청자가 집계되고, 실시간 문자 투표에 770만 건이 몰려 집계가 불가한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하니 가히 그 인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들 이후 우후죽순 트로트 프로그램이 양산되었고, 급기야 트로트 방송을 자제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모방(模倣)은 교육에서나 갈술에서 중요한 수단이다. 교육에서는 학습 수단으로서, 예술에서는 새로운 창조의 밑바탕으로서 그러하다. 교육에서의 모방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살아갈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은 신체 자세, 언어, 기본적 기능들, 편견과 즐거움, 도덕적 이상과 금기사항 등을 모방을 통해 익힘으로써 성장과 함께 사회 내에서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예술에서의 모방 개념은 다른 예술가의 제작을 모범으로 삼아 그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을 모방하여 그것과 같은 모양으로 제작하는 경우로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나 근대에서 고대 그리스 예술작품을 따라 한다거나 외적 자연 혹은 현실을 재현 또는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창작 원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방의 역할이 그친다면 위대한 예술은 등장할 수 없다. 단순 모방에서 예술로 승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예술가의 내적 번민과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따른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소재로 표현한다거나 표현 방식을 달리해 보는 등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 '창작의 고통'이 수반된 것이다.

고려청자는 옥을 인조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나오게 된 예술품이다. 옥은 예로부터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매우 귀중한 돌이었다. 이런 옥을 흙으로 재현해 보려는 시도로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나라는 중국이었으나 고려청자가 곧 중국을 능가하게 된다. 고려의 상감기법과 비색이 신비로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중국인들조차도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할 만큼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감기법을 도자기에 처음으로 응용한 것도, 유약에 3%의 철분이 포함되도록 빚어낸 것도 고통을 수반한 창작의 결과인 것이다. 만약 고려의 도공이 중국의 청자를 모방하는 데에 그쳤다면 조잡한 모조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려청자의 세계적 명성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다양성의 가치에 주목하는 까닭은 역동적인 현실에서 선택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트로트가 흥한다고 해서 베끼기, 우려먹기 식의 모방 프로그램들이 난무한다면, 결국 트로트는 점차 외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 모방에서 통합예술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창작의 고통' 과정이 따라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흥'할수록 그 안전함에 안주하기보다 독특성과 창의성, 치열한 고민과 갈등, 많은 시간과 에너지의 투자가 뒤

야 '망'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모방의 진화이다.

모방의 진화가 유사와 차이, 보편과 특별이라면 지금의 트로트는 예술로서 보편적이지도 않고 차별성도 부족하다. 청자의 비색과 같이 트로트가 단순히 대중가요를 넘어선 예술로 존재하길 바란다. 예술은 우리의 삶 속에서 수없이 그것을 보고 들어 생겨난 정서를 모방하고 담아낸 창조적 그릇이기 때문에 트로트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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