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회장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대전이 임시수도가 되어 북적거리던 1950년 7월 2일 아침 8시, 한국전에 참전하는 최초의 미군부대가 대전역에 도착했다. 총 406명의 일명 '스미드' 부대 - 사단장 딘 장군에 앞서 스미드 중령이 열차에 부대를 이끌고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 역 플랫폼에는 충남도지사를 비롯 많은 기관장과 시민들이 성조기를 들고 그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이들은 미군만 도착하면 북한군은 맥없이 무너지고 서울 탈환도 시간 문제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대전역에 도착한 미군은 그게 아니었다. 주력부대만 해도 3만명이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을 어떻게 406명의 대대급 병력으로 막는다는 것인가. 그리고 미군 병사들의 모습은 껌을 씹거나 잡담을 나누는 등 전쟁터에 나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충남도청에 설치된 '미 주한 지상군전략지휘본부'(ADCOM)에서의 작전계획을 짜는 데도 불과 1시간밖에 안걸렸다.

그만큼 미군들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패배시킨 승리감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군이 왔다'는 소리만 들어도 북한군은 혼비백산 도망치리라 믿었던 것이다. 미군은 그렇게 오만했고, 적을 과소평가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의 결과는 무참한 현실로 나타났다.

7월 5일 오산(烏山) 죽미령에서 벌어진 적과의 첫 전투에서 많은 병력손실과 함께 큰 피해를 입고 천안으로 퇴각해야만 했던 것이다. 3일 후인 7월 8일에는 뒤이어 증원군으로 도착한 미 34연대 연대장 마아틴 대령이 전사함으로써 천안까지 적에게 내줘야만 했다.

지난달 19일 시작된 미-이라크 전쟁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마치 50여년 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미국의 초기 작전실패를 보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적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한국전 때와 비슷하다.

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이 "전쟁은 빨리 끝날 것이며 바그다드와 바스라의 거리에는 기쁨이 분출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사담 후세인 정권은 땅콩과자처럼 금세 부서져 버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사람들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쉽게 무너져 버리는 조직을 '땅콩과자'에 잘 비유한다.

마치 6·25때 미군이 한반도에 나타났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북한군이 금세 부서져 버릴 것이라고 자만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북한은 3년 이상이나 전쟁을 끌면서 우리와 미국을 괴롭혔고, 지금도 '핵개발' 등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병력투입 등 작전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 북한군 3만명을 406명으로 막으려 했던 안이한 판단처럼 이라크에서도 속도전만 생각하고 4개 사단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는 건의를 럼스펠드 장관이 묵살한 것 등이 그것이다. 한결같이 미군 사령관들은 처음부터 주력부대를 대대적으로 투입했다면 지금과 같은 지루한 양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군사작전뿐이 아니다. 상대를 과소평가했다가 오히려 크게 패하는 경우를 우리는 정치, 스포츠, 그리고 기업 경영에서 흔히 보게 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도 그랬다. 요즘 어느 국회의원이 상대방을 지렁이에 비유하고 자신을 용에 비유한 발언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렇게 정치가 오만해서는 안된다. 표를 찍어 달라고 할 때는 , '지렁이' 같고 당선만 되면 자신을 '용'처럼 착각하는 오만한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항상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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