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하철시대 개막]9년간 366만명 땀의 합작품

"황무지와 다름없었습니다. 지하철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문외한이었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부딪치며 차근차근 업무를 익혀나갔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고 점차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의욕도 커져갔습니다."

붙박이 지하철건설본부맨 한명우(51) 계장이 십수 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 16일 시청역에서 열린 대전 도시철도 1호선 1단계구간 개통식에서 시민과 언론사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염홍철 시장, 추병직 건교부장관, 김광희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등이 개통 첫열차 기관사들로부터 운행신고를 받고 기념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시기상조라는 비아냥, 적자를 우려한 반대의 목소리는 커져갔고 착공 후에는 소음과 진동, 교통체증에 몸살을 앓은 시민들이 가세해 천덕꾸거리 나무라듯 했다.

"1호선 1단계 공사 대부분이 도심 통과구간이다 보니 도로 굴착에 따른 교통체증과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주변 상가의 민원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오랜 기간 이해하고 참아준 시민들이 있었기에 지하철이 개통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1월 건설본부에 합류한 안병선(50) 계장의 회고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었지만 내 몫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걸핏하면 감사의 도마 위에 오르는데다 여기저기서 뭐 지적할 것 없나 눈을 부라리는 것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업무가 고되고 책임감까지 뒤따르는지라 기피부서로 낙인찍혔고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시민을 위한 일이라는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젊은 피 심영만(40)씨도 7급공채로 96년 건설본부의 일원이 된 베테랑이다.

이들이 대전 도시철도 시대를 연 밀알이다.

96년 1호선 10공구 착공을 시작으로 순수 공사기간 9년, 투입인력 366만 명, 크레인 등 대형중장비만 100여 종, 참여업체 540여 개, 1조 1881억 원의 재원이 투입된 역사적인 공공사업은 밀알의 땀과 열정에 시민들의 인내를 양분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건설기간 10년 동안 1000여 명의 공무원이 적어도 한 번쯤은 지하철건설본부에서 근무했으니 전체대전시 공무원 여섯 중 한 명은 손을 보탠 셈이다.

"대전역 토목공사 중 폭발물이 발견돼 소제동, 원동, 삼성동, 홍명상가 주민들이 4시간 동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12공구 공사 중에는 상수도 원수관 이설로 물가뭄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묶는 과정도 참 힘들었죠."

셋이 합해 고락을 토했다.

강태걸 시설부장은 지하철건설본부의 터줏대감이다.

대전시 지하철기획계장에서 기획단으로, 다시 지하철건설본부로 맨 땅 위에 공든탑을 세운 장본인, 강 부장도 할 말이 많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경험이 없는 터라 동문들 쫓아다니며 자료 수집하고 서울 지하철을 벤치마킹하고 참 단내나는 생활이었습니다. 국정감사와 행정감사, 시민·사회단체까지 오랜 공기, 적자, 천문학적 공사비를 들먹이며 심지어 중도에 덮자는 말이 나왔을 때는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95년 기본설계 당시 전무후무한 4량 편성을 고집해 가능성을 입증받은 것도 강 부장이다.

1대 김덕중, 2대 송일영, 3대 김은배, 4대 심영창, 5대 신만섭, 6대 이강규, 7대 김광신 본부장에 이르기까지 7명의 수장과 연인원 1000여 명의 직원들이 빚은 시민의 발은 이제 무한 질주의 선상에 섰다.

김광신 본부장은 "교통혁명이 성사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주역으로 지하철 개통을 맞은 감회가 뜻깊다"며 "2단계 건설사업에도 박차를 가해 1호선 완전개통 그 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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