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하철시대 개막]9년간 366만명 땀의 합작품
붙박이 지하철건설본부맨 한명우(51) 계장이 십수 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1호선 1단계 공사 대부분이 도심 통과구간이다 보니 도로 굴착에 따른 교통체증과 영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주변 상가의 민원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오랜 기간 이해하고 참아준 시민들이 있었기에 지하철이 개통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 1월 건설본부에 합류한 안병선(50) 계장의 회고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었지만 내 몫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걸핏하면 감사의 도마 위에 오르는데다 여기저기서 뭐 지적할 것 없나 눈을 부라리는 것 같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업무가 고되고 책임감까지 뒤따르는지라 기피부서로 낙인찍혔고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시민을 위한 일이라는 자부심이 생기더군요."
젊은 피 심영만(40)씨도 7급공채로 96년 건설본부의 일원이 된 베테랑이다.
이들이 대전 도시철도 시대를 연 밀알이다.
96년 1호선 10공구 착공을 시작으로 순수 공사기간 9년, 투입인력 366만 명, 크레인 등 대형중장비만 100여 종, 참여업체 540여 개, 1조 1881억 원의 재원이 투입된 역사적인 공공사업은 밀알의 땀과 열정에 시민들의 인내를 양분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
건설기간 10년 동안 1000여 명의 공무원이 적어도 한 번쯤은 지하철건설본부에서 근무했으니 전체대전시 공무원 여섯 중 한 명은 손을 보탠 셈이다.
"대전역 토목공사 중 폭발물이 발견돼 소제동, 원동, 삼성동, 홍명상가 주민들이 4시간 동안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12공구 공사 중에는 상수도 원수관 이설로 물가뭄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묶는 과정도 참 힘들었죠."
셋이 합해 고락을 토했다.
강태걸 시설부장은 지하철건설본부의 터줏대감이다.
대전시 지하철기획계장에서 기획단으로, 다시 지하철건설본부로 맨 땅 위에 공든탑을 세운 장본인, 강 부장도 할 말이 많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경험이 없는 터라 동문들 쫓아다니며 자료 수집하고 서울 지하철을 벤치마킹하고 참 단내나는 생활이었습니다. 국정감사와 행정감사, 시민·사회단체까지 오랜 공기, 적자, 천문학적 공사비를 들먹이며 심지어 중도에 덮자는 말이 나왔을 때는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95년 기본설계 당시 전무후무한 4량 편성을 고집해 가능성을 입증받은 것도 강 부장이다.
1대 김덕중, 2대 송일영, 3대 김은배, 4대 심영창, 5대 신만섭, 6대 이강규, 7대 김광신 본부장에 이르기까지 7명의 수장과 연인원 1000여 명의 직원들이 빚은 시민의 발은 이제 무한 질주의 선상에 섰다.
김광신 본부장은 "교통혁명이 성사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주역으로 지하철 개통을 맞은 감회가 뜻깊다"며 "2단계 건설사업에도 박차를 가해 1호선 완전개통 그 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욕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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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도 없고..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가중해서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