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남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지난 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양극화'라는 말을 쓰면서 최근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부문에서 양극화라는 말이 부쩍 많이 쓰이고 있다.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 정부의 각 부처가 앞다퉈 '양극화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는 거의 매일 '양극화 해소대책'이라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각종 사회 현상에 'ooo에 양극화 현상'이라는 식의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양극화라는 말을 자주 쓰다보니 어느새 우리 사회가 양극화 단어로 오염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통령이 양극화 현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소득계층간' 등을 직접 비교하였고, 우리 일자리가 양극화되어서 고소득 일자리와 저소득 일자리는 늘어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양극화'라는 단어는 위의 예처럼 결코 좋은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말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는 데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란 최면제와 같다. 우리가 어떤 말을 내뱉고 나면 그 말을 하게된 배경이나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적과 상관없이 그 말 한마디의 의미에 얽매어 감정적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고 있다. 또 어떤 말을 자주 듣게 되면 그 말이 우리의 머리에 강하게 입력되고, 그 말이 주는 의미나 원래 의도한 목적과 다르게 우리의 가치나 감정을 좌우하게 된다. 어떤 말을 지속적으로 쓰거나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의식화'되기 마련이다.

'양극'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웠던 '극과 극'을 금방 떠올리게 되고, 어릴 때 열심히 했던 반대말 공부의 관성에 의해 양극은 반대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있다.

'양극화'란 중간지대가 없어지고 극단적으로 양쪽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표현하는 말인데, 이것이 어떤 사회적 현상을 나타내게 되면 좋은 현상에 속하는 사람과 나쁜 현상에 속하는 사람으로 분류되기 마련이고, 우리 사회는 급속하게 양쪽으로 분열하게 된다.

우리 민족은 "콩도 반쪽씩 나누어 먹어야한다"는 식으로 엄청나게 결과의 평등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고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는데, 자기 자신이 나쁜 형편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사람은 의당 좋은 형편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그 좋은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 감정이 들게 마련이다.

누구나 자신은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형편이 나빠져 기분이 좋지 않고 엄청나게 살기 힘든데, 상대편은 자신과는 비교도 안되게 잘 산다는 생각이 들 때 적대감이 나타나는 것을 특수한 현상으로 치부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얼핏 좋은 쪽을 조금 내리고 나쁜 쪽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예가 적당한지 모르지만,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는 집에서 1시간 이상 공부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한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내서 성적을 낮추고, 성적이 나쁜 학생에 대해서는 쉬운 문제를 내 주어서 성적을 올려주게 되면 과연 우리 사회 전체적 발전에 득이 되겠는가.

지금 우리는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 양극화는 해소되어야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경제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자유로운 경쟁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아니된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한 대접이 돌아가야 우리 국민경제가 오랜기간 정체되어 있는 일만불대의 국민소득을 너머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양극화라는 말로 인하여 화합하여 선진복지 국가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이 자칫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제발 양극화대책은 세우되 그 말의 사용은 삼가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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