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회장

지난 16일 오후 우리 나라 복권 사상 최대의 당첨금 170억1400여만원의 발표가 있던 날 우리 일행 몇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 TV로 그 뉴스를 봤다.

뉴스가 나오는 순간, 방에 있던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아아~'하는 탄성이 터졌다. 그리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번에는 탄성이 아닌, 한숨이 '후~'하고 동시에 나왔다. 참으로 묘한 반응이었다. 그 공통의 반응은 무슨 뜻일까?

그러자 어떤 친구가 "부러워할 것 없어! 어느 나라든 복권에 당첨되고 잘 사는 사람이 없다는군"하고 애써 자위하며 소줏잔을 목에 털어넣었다.

로또 복권의 열풍이 불면서 당첨 발표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우리의 새 풍속도다.

그러는 가운데 이렇게 국민들은 점점 마음에 깊은 병이 들어 가고 있다. 어떻게 땀 흘리지 않고 한탕으로 떼돈을 벌어 팔자를 고칠 수 없을까? 나에게도 그런 운이 있을지 모르잖는가?

원래 우리 나라 사람은 그런 '벼락부자'의 꿈을 즐겼던 것 같다.

부러진 제비 다리 한번 고쳐주고 벼락부자가 된 '흥부 이야기'가 그렇고, 정월에 즐겨 보는 '토정비결'에도 이런 '횡재수'라는 게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강원도 정선 카지노의 호황을 생각하면 더 말할 것 없다.

하루 평균 2500명씩, 1년에 90만명 상당이 이곳을 찾아 오는데 이렇게 벼락부자의 꿈을 안고 왔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돈 벌었다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패가망신까지는 안갔어도 도박중독에 걸려 새벽 노숙을 하고 9시 개장과 동시에 카지노로 출근하는 대열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인구 5500명밖에 안되는 고한읍에 전당포가 70개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곳에서 '카드깡'이나 '꽁지돈'(고리채)을 찾는 사람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가정이 파탄되고 범죄행위, 그러다 자살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금 '복권 공화국'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도박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모든 게 불황이라고 야단인데 도박산업만큼은 매년 30%씩 팽창해 도박시장이 11조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복권만 해도 로또복권, 플러스복권, 슈퍼더블복권, 주택복권, 또또복권, 스포츠복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여기에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경마장은 또 얼마나 거대한 도박시장인가.

이렇게 해서 우리 국민은 전체 성인 인구의 9.3%나 되는 300만명이 도박중독환자라는 사실(일본 2%, 호주 2.1%, 미국 2%), 15∼64세까지의 국민 1인당 1년에 평균 32만원을 복권이나 경마 같은 사행산업에 쏟아부었다는 사실, 얼마나 우려스러운 사태인가?

그런데 또 대전에 경륜장이 세워진다면 국민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핵공장이 하나 더 들어서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검토되고 있는 월평 사이클경기장은 바로 옆에 고등학교가 건축 중이고 밀집 주거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찬성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방재정 수입에 도움이 되고 대전에서 반대하면 타 지역으로 갈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지방세 수입이 당장은 그럴지 몰라도 다른 방법으로 수입증대를 모색해야 하며 우리가 안하면 다른 곳에 갈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도박중독증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성(性)의 문란과 대형경기장에서의 스포츠까지 도박으로 즐기는 정신 타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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