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성 한국조폐공사 사장

 북한과 윤상림, 새 5천원권.

이들에게는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돈세탁이란 단어다.

북한은 미국달러를 위조하거나 마약을 팔아서 번 자금을 국제적으로 세탁해 사용하려 한 의심을 받고 있고 윤상림이라는 사람은 불법적인 알선을 통해 받은 돈을 차명계좌에 입금했다가 현금화하는등 세탁한 뒤 또 다른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혐의에 대한 진위여부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관계기관의 조사나 수사가 마무리되면 확실하게 드러나겠지만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명심할 일은 돈세탁은 범죄라는 사실이다.

범죄행위로 번 돈은 그 자체로 처벌대상이고 남의 이름으로 계좌를 열었다면 금융실명제 위반이며 그냥 돈을 주었다고 해도 증여세를 물지 않아서 벌을 받게 돼 있다.

궁극적으로 돈세탁은 경제질서를 흔들어 놓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꺾어 놓기 때문에 나라 안에서나 국제적으로 모두 엄중한 처벌을 가하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북한이 공식발표를 통해 앞으로 돈세탁방지에 앞장서겠다고 밝혔겠는가.?

그러나 새 5천원권과 돈세탁의 연관성은 북한이나 윤상림 사건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느 주부가 새 5천원권이 든 바지를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했더니 인쇄가 흐려지고 중요한 보안요소인 홀로그램이 떨어져 나가더라며 새 돈의 품질문제를 제기하면서 언론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 돈은 기존 화폐보다 물빨래에 약한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새 화폐를 제조한 조폐공사로서는 먼저 그 주부에게 송구스럽다는 말을 전하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왜 새 돈이 예전 돈보다 물빨래에 약한지 설명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 은행권은 그동안 발전한 우리 경제의 위상과 나라의 품위에 걸맞게 위조방지 요소를 대폭 강화하고 예술성도 높여서 국제적으로 손색없는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옷으로 치자면 청바지를 입다가 명품 순모바지로 바꿔 입은 셈이다. 그렇다고 실용성이 크게 떨어진 것도 아니다.

돈의 실용성은 대체로 몇번이나 접어도 견디는지 오염에는 얼마나 강한지등으로 판단하는데, 이 점에서 볼 때 새 화폐는 여전히 세계최고의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물빨래를 했을 때 얼마나 견디는지를 따지는 기준은 정해진 것이 없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몇몇 언론사가 직접 실험을 했을 때도 새 화폐는 기존 화폐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유로나 달러등에 비해서는 변질이 덜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수로 돈이 든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다는 얘기다.

최악의 경우 돈이 훼손됐더라도 국민들이 손해보지는 않는다. 한국은행은잉크가 번졌거나 홀로그램이 떨어져 나갔다 하더라도 진짜 돈이라는 것만 확인되면 모두 새 돈으로 바꿔주고 있고 찢어지거나 잘라진 돈도 4분의 3이 남아있으면 액면가 전액을, 절반이 남아있다면 절반값을 돌려준다.

대단히 훌륭한 리콜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을 세탁기에 넣고 빨지는 말자. 값비싼 명품 순모바지를 청바지와 같이 세탁하는 일은 없지 않는가.

미국 달러는 액면과는 상관없이 크기가 모두 같다.

돈을 셀 때 대단히 불편하지만 일달러든 백달러든 항상 꼼꼼히 확인하면서 사용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내년이면 천원권과 만원권도 품위있는 모습으로 새로 나오게 된다. 우리돈은 달러와는 달리 권종마다 크기나 색상이 확연히 구분되지만 돈을 소중하고 정당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라도 국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가정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돈세탁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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