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현 천안대학교 총장

 어렸을 적 동산에 올라 뛰놀면서도 항상 이상하게 생각하던 것이 있다. 산허리 우묵한 곳에 옹달샘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물을 길어가기 때문에 저녁나절에는 물이 거의 없어진다. 도옥독 긁는 소리가 날 때까지 조롱박으로 남김없이 물을 길어간다. 그러나 아침에 와보면 어김없이 물이 옹달샘 그득히 다시 고여 있는 것이었다. 어디에서 그 많은 물이 매일 다시 솟아나는 것일까?

나는 어렸을 때의 그 옹달샘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나의 좌우명으로 삼고 지금껏 살아왔다. 무엇이든지 나에게 주어진 것을 다 쓰고 나면 어김없이 다시 채워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돈이 제일 쉽게 채워진다. 30년간 학교 경영을 하면서 어려운 때도 많이 있었다. 직원이 나까지 셋인데 라면이 두 개 밖에 없는 것을 보고, 점심때는 자리를 피하여 물로 배를 채운 적도 있었다. 월급날이 돌아오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간신히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면, 남은 한 달을 살 일이 막막하다. 그래도 어디선가 또 돈이 들어와서 다음 달 월급을 줄 수 있었다.

어떤 사업에 매달려 몇 달을 힘들게 보내다가 지쳐서 거의 쓰러질 것 같을 때도 있다.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서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있을까를 걱정하지만,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새로운 힘이 솟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어디에선가 힘이 솟아나와 누워있을 수가 없다. 내 있는 지혜를 다 짜내어 강연 원고 한 편을 완성한다. 이젠 내가 가진 지식을 다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또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음 강연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일까. 고인 물을 퍼내지 않는 사람이다. 고인 물을 퍼내지 않으면 그 물도 끝내는 신선도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돈을 움켜쥐기만 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나누어주고 쓸 줄 모르면 가치 없는 돈이 된다. 지혜를 사용하지 않고 모아놓게 되면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지게 되고 만다. 힘들다고 에너지를 다 쓰지 않으면 배가 나오고 넓적다리가 굵어질 뿐이다. 시간을 다 쓰지 않으면 길지만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유산을 많이 물려받아서 일할 필요가 없으니 운동이나 하고 가끔 여행이나 하며 사는 삶이 아름다운가. 한 주간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운동을 하면 그 운동이 그렇게 재미있지만,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운동만 하면 아무 재미가 없다.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하면 그 여행이 의미 있지만, 할 일없이 빈둥거리다가 또 여행하면 무슨 흥미를 느끼겠는가?

성경말씀 마태복음 24장에 달란트의 비유가 등장한다. 한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세 종에게 각각 그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얼른 나가서 부지런히 장사하여 각각 그 만큼의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를 땅에 묻어두었다. 먼 후일 주인이 돌아와서 계산을 한다. 첫 두 사람은 칭찬을 받았으나, 돈을 땅에 묻어두었던 종은 꾸지람을 들었다. 아마 이 종의 마음에는 주인의 돈을 가지고 장사하다가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혹은 일하기 싫은 게으름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있는 것을 다 소진하는 삶이 아름답다. 하루 종일 힘들여 일하고, 죽은 듯이 지쳐 쓰러져 잠에 빠지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새로운 힘으로 충일한 건강한 당신을 축복하고 싶다. 평생의 삶의 목표를 가지고,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모든 기력을 다 태워버린 후, 스러지는 죽음이 복되다. 영생의 새 아침을 맞아 새롭게 고이는 옹달샘처럼 새로운 삶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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