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천안문화원 사무국장

 살아가면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회색 빛 철근 콘크리트뿐이다.

혹 짬을 내어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크기만 다를 뿐 성냥갑 같은 사각형의 건물들이 빈틈없이 늘어서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풀과 땅을 삼켜버린 아스팔트의 길, 도처에서 귀를 찢는 소란스러움, 그 사이를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차량들이 질주해 간다. 결국 하루에 한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여유조차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쳐다보아야 뿌옇기만 한 하늘과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이 다시 일상으로 가두고 있다.?

혹자는 현란한 광고판으로 온몸을 두른 채 중량감을 뽐내고 있는 이러한 도시 풍경이 현대화를 이룬 한국의 모습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볼품 없이 제멋대로 솟아오른 고층빌딩들은 한국적인 것도, 또한 문명의 발전과 그 척도도 아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도 어떤 의미나 이야기, 건축가나 예술가의 혼이 배어있는, 독창성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 얼마나 있는가 말이다. 보다 넓게, 보다 싸게 건물을 짓자니 자연 볼썽사나운 철근덩어리와 콘크리트 장벽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문화적인 환경, 예술적인 감흥이 조성되기가 어렵다.

이제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는 지났다.

삶의 질을 논하는 이즈음에서 제발 문화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도시를 생각해보자. 물론 제일의 고려는 미적인 차원일 것이다. 도심의 고층 건물들은 밤에도 건물 내부의 조명을 켜놓아야 하고, 눈에 띄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집안에 빨래라도 마음대로 널다간 여지없이 벌금을 물어야 하는, 이처럼 철저한 통제 하에서 호주의 시드니는 세계적인 미항(美港)으로 태어났고, 파리와 런던은 물론 유럽의 도시들은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지켜왔고, 또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던 아름다운 도시로 1920년대의 파리와 1940년대의 뉴욕을 뽑았다. 이들 도시는 16세기 코스모폴리탄이즘이 꽃핀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안정된 도시구조와 찬란한 문화가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란다. 최근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베네치아와 파리와 뉴욕의 영광을 꿈꾸며 21세기의 새로운 도시창조에 열심이다. 즉, 도시환경의 질을 높이고 문화와 아름다움이 깃든 경쟁력 있는 도시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경쟁력 있는 도시 만들기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삼는 것은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테마를 만드는 일이라 한다. 그 도시만이 갖는 독특한 자연환경과 고유의 특징을 살려 테마화하는 것, 이것을 도시의 기본요소로 삼는다는 것이다.?

음악의 도시 빈, 물의 도시 베니스, 풍차와 꽃의 도시 암스테르담, 대학도시 케임브리지, 기업도시 맨하탄, 카지노와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 열대 정원의 도시 싱가폴 등은 뚜렷한 도시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오늘날 지구촌 모든 이들이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들이다. 이들 도시는 그 지역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살리는 통일된 테마로 세계인을 불러모으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토요휴무제의 확대와 보편화로 인해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휴식과 관광을 수반하는 레저시장의 시장성과 성장성은 한층 발전할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여가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적당한 낭만과 쾌적한 안식과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도시를 만드는 일에 경쟁적으로 나서야 한다. 도시는 사람이 넘쳐나는 곳이기에 더더욱 감성을 따스하게 감싸안을 '문화' 가 필요하다. 문화가 살아 숨쉬는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 일, 이는 우리보다 앞선 선진도시들이 끊임없이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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