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우 국가기록원장

 민주화 진전으로 참여와 투명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면서 행정의 책임성을 담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기제로서의 기록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사규명위원회의 발족으로 일제와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 시대의 불행했던 역사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과거의 진실을 어떤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규명할 것인지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시간대가 다른 과거사의 일을 몇세대가 지난 지금에 와서 규명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사건의 당사자나 증언을 해줄 수 있는 관계자들이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에 과거사 규명은 남아있는 기록에 대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과거사 규명의 열쇠는 믿을 수 있는 기록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식민통치를 받던 일제시대의 기록은 일부가 보존돼 있더라도 부실할 수 밖에 없다.

일제는 패망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기록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재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시대 기록은 일제가 퇴각하면서 미처 없애지 못한 조선총독부 기록과 한일수교 이후 정부간 교섭에 의해 일본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수한 강제연행자 명단 등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과거사 규명의 증거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를 규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해에 일제 강제연행 희생자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면서 조상의 강제연행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찾기 위해 국가기록원을 방문하는 민원인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기록을 찾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부는 기록을 찾지 못해 가슴을 치며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기록이 없는 것은 일제시대만의 일이 아니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 손으로 정부를 수립한 이후에도 전쟁과 가난, 그리고 무관심속에서 많은 기록이 적절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폐기 됐으며 그러한 상황은 1969년도에 정부기록보존소가 설립되면서 다소 나아졌지만 2000년 기록관리법이 제정돼 기록의 무단폐기가 법으로 금지되기 이전까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선진국들은 기록을 과거의 문화유산으로 철저히 수집해 보존하고 그 속에 담긴 지식정보를 자원화하여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정부도 만시지탄은 있지만 국가기록관리 혁신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아래 지난해에는 국가기록원과 정부혁신위원회가 기록관리혁신의 미래 청사진인 로드맵을 국무회의에 보고했으며 기록관리혁신을 가로막는 관련법령의 개선과 공적기록의 철저한 관리를 위한 전자기록시스템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기록정보의 공개열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기록정보콘텐츠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국민이 필요로 하는 기록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제공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국가기록통합검색시스템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가기록관리체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중요기록에 대한 실태조사와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일, 기록관리 국가표준을 제정하는 일, 기록관리 인프라와 기록관리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일 등 그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들어 기록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면서 기록관리 혁신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국가기록원장으로서 기록관리 혁신업무를 담당한지 벌써 1년 반이 돼가지만 그동안 해놓은 일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점에서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국가기록관리 혁신의 비젼과 전략을 다같이 합심해 만든 만큼 머지않은 장래에 내셔널 아카이브(National Archive)로서 국민 곁에 성큼 다가가 있는 국가기록원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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