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만 신부·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장

 경제 논리에 의하면 '시간은 곧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노동의 대가가 결정되고, 상당한 로열티가 보장되는 특허권 취득이나 경제 주도권 또는 우승 쟁취를 위해선 초 다툼이랄 수 있는 치열한 시간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시간이란 무엇보다 하느님이 주시는 소중한 은총의 선물이라고 배운다. 인간의 생명은 시간과 함께 세상에 존재하게 되며 시간은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에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순간 속의 영원'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일생은 순간들의 모음이고 일생도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순간일 뿐이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이라는 놀라운 선물은 세상의 삶에 달려 있다. 세상의 찰나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원한 구원의 은총이 달려있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어느 날 예사롭지 않은 영감에 바오로 사도의 서간집을 집어 펴서 한 구절을 읽게 되는데 그 순간 철퇴를 맞은 듯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 구절을 바로 그에게 직접 하느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놀라운 은총을 체험한다. 그 순간 이후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의 유명한 '고백록'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순간의 시간은 그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이끈 은총의 계기였다.

어느 문인의 글에서 메모 했던 다음의 내용은 일상에서 순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일 년의 가치를 실감하려면 재수생에게 물어보라. 한 달의 가치를 실감하려면 조산아를 키운 어머니에게 물어보라. 한 주간의 가치는 주간지 편집인에게 물어보라. 한 시간의 가치는 데이트에 늦는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 분의 가치를 실감하려면 방금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 초의 가치를 실감하려면 방금 교통사고를 당할 번한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일 미리 초의 가치를 실감하려면 올림픽 백 미터 달리기에서 금메달을 놓친 이에게 물어보라."

목숨이 위태로워 응급치료를 요하는 환자에게 5분이란 생명이 달린 시간이다. 입시를 치르고 있는 학생에게 5분, 운동선수에게 경기 종료 전 남은 5분은 그야말로 천금의 가치를 지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는 5분이 아니라 다섯 시간도 그냥 흘려버리면서도 그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아까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토록 소중한 시간의 가치를 일상에서 소중히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공짜라는 생각 때문일 듯싶다. 그래서 아까워하거나 안타까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늘 시간이란 무한히 남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병상에서 임종이 멀지 않은 시한부 생명의 환자나 그 가족은 촌음의 시간의 가치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상에서 우리는 마치 우물곁에서 무한정 물을 퍼내듯이 시간의 고마움을 못 느끼고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해의 날들은 지난해의 날들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한 무엇으로 충만하길 소망하며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날의 시간을 아끼고 잘 활용할 때 주어지는 은총의 결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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