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 대전시립미술관장

 대전은 21세기 한국의 경제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과학기술의 도시, IT· BT·NT의 중심인 연구개발특구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20세기 아날로그 문화를 대체하는 디지털 문화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덕연구단지의 성공 여부가 미래 한국의 모습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건 중에 하나라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대전시의 미래상은 선택이 아닌 주어진 사명이며 대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도시, 미래지향적 선진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부여받은 대전시의 문화정책을 수행하는 전문기관 중의 하나로 그 임무가 중대하다.

시립미술관의 주변에는 통신·컴퓨터·반도체·위성 등 정보 분야의 기술에 관한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비롯해 최첨단 과학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연구소들과 과학벤처들, 정부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인 국립중앙과학관,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원과 정보통신대학까지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을 주도하는 산·학·연·관이 전부 밀집해 있는 대전에 위치한 대전시립미술관의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미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은 거의 완벽하다고 본다.

다행히 미술의 전반적인 흐름도 눈을 즐기기 위한 대상 혹은 특수층을 위한 대상에서 벗어나 인간과 사회를 통합하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방식 위에 세워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미술이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과학과 예술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시대에 과학의 도시 대전을 대표할 만한 문화예술축제로 정착될 '디지털 파라다이스:2005대전 FAST'는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의 11명의 국제작가들이 참여한 시립미술관 전시를 중심으로, 젊은 한국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KBS방송국 전시실, 4명의 싱가포르 작가들이 만들어낸 유성문화원 갤러리, 4명의 마카오작가들이 설치한 한밭도서관의 미술관, 마지막으로 필리핀 작가들이 초대된 대안공간 반지하 등 대전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개최됐다. 아울러 '디지털 파라다이스'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미디어아트의 제도적 지원과 아시아에서의 미디어아트의 현황과 비전'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도 3일간에 걸쳐 시립미술관 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가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조력이 과학기술과 결합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미술의 아우라(예술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과학기술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 사이에서 일어나고 활발한 반응의 현장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유화나 조각과 같이 서양 역사가 만들어낸 미술이 아닌 새로운 디지털 매체를 통해 동·서양의 작가들이 자신들의 철학과 미학을 개성적으로 표현한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이러한 미디어아트의 성패는 기획자가 고도의 기술과 성능이 뛰어난 기계장비와 창의력이 넘치는 예술가의 만남을 잘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미디어아트작품은 예술가의 상상력,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는 과학자 그리고 좋은 기계 장비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전은 바로 이 세 가지가 요소를 다 갖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과학자(기술자)와 기계장비 그리고 예술가를 기획자가 어떻게 잘 접목시키느냐가 전시회의 열쇠이다. 2년 후에 개최될 '2007 디지털파라다이스'는 예술가, 이론가, 기획자뿐 아니라 과학자, 기술자가 함께하고, 국립중앙과학관, 연구소, 대학, 벤처기업 등 산·학·연·관이 함께하는 국제행사로 확대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시립미술관은 위의 기관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인적인프라 구성과 운영에서의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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