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만 신부·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장

 서점 한 편에 성탄절 카드와 연하장이 진열 되고 거리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했으니 어느덧 성탄절이 멀지 않고 이 해의 남은 날짜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헤아리는 때가 됐다.

이맘때면 객지에 나간 가족이나 거처 없이 헤매는 노숙자들, 소외계층의 사람들이 염려스러워지고 마음에 걸리게 된다.

생활여건이 안 좋거나 궁핍한 이들에게 추운 계절의 삶은 고생스럽고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인지 안타깝게도 가난한 이웃이나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과 협조가 크게 줄고 있어 노인들, 장애인들이 더욱 쓸쓸해하고 있다고 한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반성해 볼 문제이기에 마더 데레사의 가르침과 모범적 삶을 회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싶다.

마더 데레사는 비참한 전쟁들과 참혹한 학살, 이념대립, 착취, 인권 유린, 빈곤 등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으로 얼룩진 20세기의 각박한 상황에서 '행동하는 사랑'으로 사랑의 기적을 일으킨 성자였다.

동료수녀들과 함께 그는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 나병환자, 에이즈 환자 등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봉사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체험하도록 하였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만큼 감정이 메마른 이들까지 마더 데레사와 그 동료들한테서는 동정이 아닌 참 사랑을 느꼈다고 많은 사람들은 증언한다.

그는 가난을 두 차원으로 나눈다.

하나는 물질적 가난으로서 의식주와 일상용품의 결핍이다.

다른 차원은 영적 가난으로서 소외감, 고독, 이기심, 윤리의식 결여, 애정 결핍, 무엇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결여이다.

전자의 경우는 물질적으로 충족될 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며 이것은 개인, 가정 그리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황폐케 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을 주거나 집 없는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쉽고 그것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지만, 무시당함, 버려짐, 애정 결핍 등 영적인 탈진에서 오는 쓰라린 분노와 상처를 치유해주거나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영적 가난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가정에서도 있을 수 있으며 가난한 이는 실상 가장 가까운 가족 중에 있을 수 있다.

가난을 나누는 일은 멀리 있는 이에게 큰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관심을 가지며 작은 일로 봉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질적 가난이 어떻게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겠는지 질문받은 그는 "모두가 함께 가난을 나눌 때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물질적 가난은 영적 가난이 해결될 때 자연히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나눔의 정신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마더 데레사는 세상의 가난을 극복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살고 활동하고 있는 위치에서 조그마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시작되고 실현 가능하다는 진리에 빛을 비추어준다.

그는 '나눔 없이 평화는 없다'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일깨우며 사랑의 나눔을 호소했다.

"세상은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한없이 궁핍하다"는 간디의 명언대로 탐욕은 전쟁, 빼앗음, 이기주의 그리고 물질적 가난을 초래하는 영적 가난을 낳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 나누면 세상의 것은 사람들에게 충족하지만 탐욕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을 때 탐욕은 한이 없기에 늘 궁핍하다고 여겨 쌓아두게 하므로 세상엔 전혀 가지지 못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따지고 보면 탐욕이 가장 불쌍한 가난이다.

아흔 아홉 개를 가진 사람은 한 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 백 개를 채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물질적 가난은 이기심, 인색, 사랑결핍 등 탐욕이란 영적 가난이 해결되면서 자연히 풀리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