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혁 병무청장

 20세기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인체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이며 특히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는 항생제의 발명은 발병이 곧 죽음을 의미했던 여러 질병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이 정복한 질병의 수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새로운 질병이 끊임없이 출현하는가 하면 원인도 치료방법도 찾지 못한 희귀한 질병들이 여전히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병무청 징병검사 과정에서도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군 생활로 인해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상태를 급속히 악화시킬 수 있다는 판결이 내려진 바도 있다.

굳이 이런 판례가 아니더라도 고질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군복무를 하게 되면 전투력이 약화되고 무엇보다 질병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로 정예자원을 선발해야 하는 병무청으로서는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병무청에서는 지난 5월부터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등 5개 대학의 교수진과 학술연구용역 계약을 체결,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의 합리적인 적용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희귀난치성 질환의 특수성이 고려된 좀더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정기준의 확립 등 신체등위 판정에 대한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 결과는 지금 군의관과 징병전담 의사들이 심층 검토 중에 있으며 조만간 대안을 마련, 보다 발전된 징병검사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1949년 병역법이 제정된 이후 1950년부터 징병검사를 실시해 온 지 올해로 5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징병검사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으나 이런 가운데서도 병무청은 정확하고 과학적인 검사를 통해 그에 맞는 의무를 부과하고 검사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하기 위해 징병전담의사에 의한 검사실시, 징병검사장 완전공개, 병역판정의 2심제도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으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해왔다.

실제로 올 한 해 30여만 명에 대한 징병검사에서 단 한 건의 불미스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투명하고 공정한 검사를 위해 우리 병무직원이 각고면려(刻苦勉勵)한 결과이며 투명공정한 검사가 이제는 완전히 정착되었음을 보여주는 예라 생각한다.

그러나 투명하고 공정한 검사와 행정처리에 모든 국민이 만족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검사가 이뤄졌다고는 자신할 수 없다.

특히 군내 의료체계를 둘러싼 사고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신체검사를 실시, 그 결과에 따라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병무청으로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실제로 지난 6월 김일병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징병검사 시 인성검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안타깝고 송구스러우나 이런 불행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허점을 살피고 대책을 연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임무라 할 것이다.

군복무 부적합자에 대한 입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인성검사 문항을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한편 의무자들의 성실한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검사공간을 보다 쾌적한 분위기로 만들고 정신보건 임상심리사를 배치할 예정이다. 병역의무란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는 특성상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인성검사를 포함한 징병검사의 실질적인 과정을 행정공무원만의 노력만으로 완벽하게 실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징병검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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