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곡 계룡산 갑사 주지

가을의 갑사는 모든 색깔이 모여 있어 총천연색이다. 너무 아름다워 '환상적'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른다.

계룡산의 사계절은 인간에게 인생의 무상함을 가르쳐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유소년, 청년, 장년, 노년과 비교된다.

봄이 되면 잔뜩 움츠렸던 대지를 뚫고 새싹이 나온다.

이윽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온 산이 훈훈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여름에는 산과 계곡의 신록이 절정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저마다의 색깔로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곧 찬바람이 불면 그 예쁜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겨울의 동장군이 엄습하여 대지의 동식물을 얼어버리게 한다.

봄, 여름, 가을에 저마다의 모습을 뽐냈던 것들이 겨울에 하얀 눈이 내리면 모든 게 하나로 돌아간다.

하얀 백지가 되는 것이다.

계룡산의 나무와 들풀 그리고 동물들은 같은 몸으로 직조된 천 위에 색깔을 입고 있지만 어느 것도 같은 빛깔은 없다.

자연이 내려앉은 천 위의 빛깔은 곱고 신비하다.

화려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깊이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빛깔은 없다.

자연이 준 수많은 빛깔들은 결코 다른 빛깔을 탐내지 않는다.

저 스스로도 아름답지만 함께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념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남북 화해시대와 더불어 등장한 남남갈등이 시간이 흐를수록 보수와 혁신으로 갈라져 이념색깔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망국적이라고 하는 지역갈등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서울과 충청지역의 갈등, 그리고는 모 대학 교수의 북한 동조 발언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져 나라가 혼란스럽다.

심지어는 '보수꼴통', '빨갱이'라는 적대적인 용어가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들의 입에서 마구 쏟아지고 있다.

'자신이 제일 잘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불교에서는 아상(我相)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하는 일은 잘 한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기는 심리가 지금 지구촌에 벌어지는 테러와의 전쟁 등 모든 갈등을 계속 자초하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은 아상을 없애는 것이다.

아카시아 나무보다 질긴 아상의 뿌리를 잘라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온갖 탐욕에 물든 '나'를 철저히 죽여야 참다운 '나'가 존재한다. 우주에서 나 혼자 못 산다.

더불어 살게 되어 있다.

조그만 풀 하나에도 주위에 도움을 주는 은혜가 깃들어 있다.

세상의 모든 색깔은 파랑, 노랑, 빨강, 하얀, 검정색의 다섯 가지 기본색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아무리 현란한 색채라고 해도 이 다섯 가지 색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조화를 이뤄야 나온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색깔을 무너뜨린 색이 있다.

이 오색을 물들인 색이다.

검지도 희지도 않고 붉지도 않은 색깔이다.

이른바 괴색(壞色)으로 모든 색깔이 무너진 색이다.

오색의 빛깔이 모두 뒤섞인 색깔이기 때문에 여유가 있고 때도 쉽게 타지 않는다.

승려들이 입는 가사와 같은 색이다.

인간 마음의 색깔도 이와 같다.

깊어가는 가을, 모든 감정적인 색깔을 무너뜨린 괴색의 마음을 지녀 보자.

그래야 사는 동안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허허롭게 살 수 있다. 내가 편안하고 남이 편안하고 주변이 편안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