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수 조달청장

몇 년전 개봉됐던 '미스터 커리'라는 영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흑인 여성인 주인공 로렐 에어스(우피 골드버그)는 뉴욕 월스리트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투자분석가 였다. 그녀는 부사장 승진을 앞두고 부하 남성 직원에게 밀리자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게 된다. 그러나 로렐에게 선뜻 돈을 대려는 투자자가 없다. 아무리 좋은 사업계획서를 내밀어도 대답은 "나는 괜찮은데 동업자갉"였다. 뛰어난 기획안이 휴지조각으로 쌓여나가고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여성사업가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사업하는데 얼마나 사회의 편견과 벽이 높은가를 단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도 미국의 여성기업인 환경은 나은 편이다. 지난 91년 여성경제인발전법을 제정, 연방부처와 산하기관의 지원시책을 조정감독하는 여성기업인 활동 중재위원회를 두고 있다. 연방정부의 수의계약분 중 일부를 여성기업인에게 배정하는 여성기업담당국의 역할도 크다.

미국의 여성기업은 800만개에 육박하고 연 매출액만도 2조 달러를 넘어선지 오래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고용주가 35만명을 돌파했다. 전체 고용주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사상 처음으로 2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영세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상시 종업원이 5인 미만에 불과한 여성기업이 전체의 97%를 웃돌고 있고 그나마 종업원이 50인 이상인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즉 음식·숙박업, 기타 서비스업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 할 뿐 제조업이나 건설업 등 외형이 큰 여성기업은 많지 않다. 여성기업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영화 '미스터 커리'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적 벽이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기업인들의 활동폭을 높일 수 있는 사회적 기반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럽사회에서는 일찍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사회정의로 정착돼 왔다. 왕과 귀족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평민보다 앞서 솔선수범하거나 절제된 행동으로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것을 의무로 받아들였다. 귀족들은 앞장서 전쟁터로 나가고 더 많은 세금을 부담했다. 척박한 환경에 있는 여성기업에 대한 지원도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틀 속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분야든 기울어진 저울대를 바로세우는 작업이 선행돼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과거 외환 위기속에서도 여성기업인들의 부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만 보더라도 그 잠재력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기업인에 대한 지원은 경제활동 인구의 범위를 넓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조달청이 여성기업인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조업체는 물론 설계, 감리 등 시설용역까지 소액수의계약을 허용하고 있다. 해당 여성기업에게는 3000만원 이하 소액 물품구매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추천을 받아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했다. 1억원 이하의 소규모 공사계약도 역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추천으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이밖에 적격심사시 여성기업인 우대정책도 시행하고 있다.

여성기업인에 대한 각종 지원책이 알려지면서 계약물량과 구매물량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기업 지원방안을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달청이 추진하고 있는 여성기업지원제도가 불균형의 기업문화를 바꾸는데 일조했으면 한다.

여성기업에 대한 지원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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