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수 충남대 총장

지방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시대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지역, 우리대학의 문제를 자율적으로 잘 처리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방과 대학은 중앙집권적인 논리 하에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지시와 감독 하에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학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보면 오늘날 강조하는 자율과 책임의 지방자치는 그냥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간의 수많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 숙성되어온 우리의 역사적 산물이 아닌가 싶다. 즉, 우리나라 40, 50년대(1-2공화국) 태동기, 60, 70년대(3-5공화국) 중단기를 거쳐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으로 지방자치의 부활(1990년대)을 보게 되었고, 마침내 오늘날 지방자치시대의 화두는 어떻게 하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지방자치의 부흥기) 발전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는 이 시대의 큰 흐름으로서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 세계화시대의 새로운 정치행정환경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일방적인 통치(Government)로서는 더 이상 국가발전을 기약하기 어렵고, 따라서 지역중심의 국정운영을 수행케 하여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및 시민사회가 협치(Governance)로서 국가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각 지역마다 정계, 학계, 시민단체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러한 환경변화에 부응한 지방분권과 교육분권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려는 많은 학술세미나가 경쟁적으로 치뤄지고 있고, 그동안 많은 정책과제들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주민과 대학구성원들의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교육자치에의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인 듯하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 요인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떠올리게 한다.첫째, 우리의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지방분권이 누구의 필요에 의해 제기되었는가의 물음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본다. 즉, 그동안 민주화의 운동의 결과로서 획득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지방분권은 주민, 대학구성원들의 필요보다는 중앙정부의 정치권의 지배논리에 따른 국가의 필요에 의해 더 많이 추구되어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보니 지방과 대학의 문제를 중앙(정부)의 논리로 해결해나가려 했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하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즉, 지방분권, 교육분권을 중앙집권방식으로 수행하려 했던 것이 우리의 솔직한 지방자치요 교육자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둘째, 지방자치를 지역의 독립성과 자율성만 강조하다보니 지방자치단체나 대학기관들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연계성을 갖지 못한 채 격리되어 운영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중앙정부로부터 완전하게 자율과 책임성을 부여받아야 할 자치권이 미약하여 지방자치단체나 대학이 자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넷째, 지방자치단체나 대학이 자치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노력이 미흡하였고, 다섯째, 지역이기주의에 따른 지방행정의 비효율성이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은 지방정치행정을 이끄는 구성원들의 행태가 민주주의정신에 적합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지방행정의 책임자들은 주민의 봉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기 보다는 권력지향적인 인사들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지도자들은 주민과 지역에 봉사하는 것이 명예롭게 인정되는 문화를 형성해내는데 실패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지도자는 권력을 가진 자로 주민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으로 주민과 기관구성원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명예스럽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 빛을 크게 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방자치시대에 노블레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 지도층의 의무)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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