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충남테크노파크 원장

디지털적 사고방식이란 '0'과 '1'의 두 가지만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예를 들어 '좋다'와 '나쁘다', '맛있다'와 '맛없다'와 같이 사물에 대해 두 가지만을 생각한다.

명쾌하기는 하지만 인간미는 좀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아날로그식은 중간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이다.

쉽게 말해서 디지털은 숫자로 나타나는 시계, 아날로그는 바늘이 돌아가는 시계라고 보면 된다. 1초에서 2초가 될 때 디지털식은 1에서 2로 바로 바뀌어 버리고 그 중간은 없다. 하지만 아날로그식은 1초에서 2초가 될 때 바늘이 그 중간을 옮겨가면서 1.1초, 1.2초를 거쳐 1.9초를 지나서야 비로서 2초가 되는 방식이다.

'뜨겁다', '차갑다'가 디지털식이라면 '미지근하다', '따끈하다' 등 그 중간적인 과정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날로그식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디지털이란 키워드는, 첨단의 기계문명, 정보화와 미래사회, 컴퓨터나 로봇, 비인간화 등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되고, 이런 점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정이 흐르는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디지털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의 문화적 심리적 장벽이 높아지고 이에 비례해서 디지털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양자가 조화될 수 없는 걸까?

디지털의 장점은 명확하고 분명함이다.

아날로그는 모호하고 불분명하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이다.

디지털의 분명함과 아날로그의 따뜻함이 공존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가장 좋은 디지털은 아날로그처럼 느껴지는 디지털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디지털은 점점 아날로그를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날로그를 닮아가려는 디지털 기술의 사례 중 하나로 컴퓨터와 관련된 기술을 들 수 있다.

컴퓨터를 입고 다니듯 우리 몸에 부착해서 필요한 기능을 구현한다면 어떨까? 자신이 컴퓨터를 활용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과 일체화된 컴퓨터를 입고 안경 모니터로 인터넷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고, 컴퓨터 상에서 보이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냄새나 향기를 구현해서, 맛있는 음식이나 향수 등을 실제와 같이 느껴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기술들은 곧 실용화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가장 디지털스러운 도구인 컴퓨터가 점점 아날로그화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아날로그가 아닌 흉내내는 것이긴 하지만 인간 감성에 호소하는 차원에서 보면 긍정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주변에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기반인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행동은 상당히 아날로그 적이어서,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려고 하고, 사람들과 뭉치기도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이 그대로 투영된다. 온라인 동호회의 활성화는 곧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온라인은 하나의 기반이자 계기일 뿐,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서 나누는 아날로그적인 기쁨을 사라지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직접 대면을 통해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고 친밀감을 형성해야 비로소 관계가 완성된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사라지게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더 번창하게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이분하는 것 자체가 바로 디지털식 이분법이다. 둘은 상호 보완하고 발전하면서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디지털로 인해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생활도 편리해졌지만, 아날로그적인 보완이 뒤따르지 못하면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진 갈등과 비인간적인 문명을 감당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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