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에 달하는 고가의 과학 장비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임에 틀림없다. 전국대학과 연구소 등 344개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기초과학지원 장비의 공동 활용률은 고작 16.6%로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4조4000억원의 재원을 들여 취득단가 1000만원 이상의 고가 장비 10만5000여종을 구비해 놓았으나 정작 활용을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산업체의 과학 장비 활용도는 나은 편이다. 연구기관별 고가장비 공동 활용 실적 41만건 가운데 절반은 연구기관과 산업체간에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대학의 장비 공동 활용건수가 전체 대비 10%대에 그친다는 점이다. 대학들이 과학지원 장비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실험실습 내지는 연구 활동을 소홀히 했다는 증거다.

과학 장비 공동 활용이 낮은 이유로 연구 장비 정보망 데이터베이스(DB)구축 미비를 꼽을 수 있다. 현재 DB에 등록된 장비는 전체 장비의 28%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어디에 어떤 장비가 있는지 조차 모르니 제대로 활용될 리 만무다. 이는 국가?·지방자치단체·정부투자기관으로부터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를 지원받은 대학, 연구소 등이 보유한 고가의 연구 장비는 DB를 구축하고 등록된 연구 장비의 공동 활용을 촉진토록 한다는 '협동연구개발촉진법'의 입법취지와도 배치된다.

온통 외제품 일색인 과학장비 시장 구조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보유 장비의 59%가 외국산 장비며, 특히 1억원 이상의 초고가 장비는 77.1%가 수입품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국산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셈이다. 외제품을 대체할 국내산 제품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외화를 낭비해 가며 외국산 장비 수입을 고집하는 것인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첨단 연구기기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경쟁력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고가의 과학 장비를 창고에 방치해 둘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다. 이제라도 고가 장비의 중복 취득을 억제하고 공동 활용기반을 조성하는 데 진력해줄 것을 촉구한다. 무엇보다 과학기자재 정보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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