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弟가 즐긴 값진 공부

곱디고운 꽃 분홍색 종이 위에 편지를 쓴다. 해맑은 웃음의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태우, 원준이, 석한이….

첫 머리엔 여전히 '사랑하는 나의 꼬마 친구들' 그리고 뒤늦은 답장에 미안하다는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 국어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정을 나누고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기로 했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이웃집 아줌마, 경비원 아저씨…. 아이들의 머릿속엔 고마움이 그리도 많은지 편지 쓸 대상을 줄줄이 꿴다.

그러나 날마다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즐거움에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좀 더 의미있는 글쓰기 학습활동으로 자기가 쓴 편지를 직접 우체통에 넣어 보고 편지가 전해지는 과정을 깨닫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

편지에 대한 답장이 필수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받는 즐거움을 더해 주기 위해 대상은 선생님으로 하고 지나간 1년을 떠올리며 글을 쓰도록 했다.

편지쓰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신난 강아지가 되어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우체통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두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편지에 대한 아이들의 기다림은 시작됐다.

이틀 후부터 도착된 편지들을 밤새워 한장 한장 읽어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 아홉살 배기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편지봉투를 아이들에게 나눠 주며 달라진 점을 찾아보게 해 편지가 전해지기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 수고하신 분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상기시켰고 편지가 묶여진 순서대로 답장을 써 보내겠다는 약속도 했다.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아이들은 기다렸을 게다. 대문 앞 편지함에 살짝 끼워진 편지 한 장을….

짧지만 꽃 분홍빛 편지로 물든 엽서를 받아들고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저만치 다가오는 환한 봄? 새 학년에 대한 부푼 꿈? 잔잔히 다가오는 보고픔의 맛? 나의 상상을 뛰어넘어 아이들은 갖가지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개학날 몰려오겠지.

초고속 인터넷 세상이 아무리 좋다지만 자기 손으로 정성껏 쓴 편지의 오고감을 통해 마음에 진한 감동이 심어졌고 그것이 가끔 살아 움직여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갈 테니 이보다 값진 배움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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