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유괴사건에 국민 모두가 경악 1년뒤 노래로 탄생

두형이를 돌려줘요??

??????????????????????????????????????????????????????????????????????????? 반야월 작사·라음파 작곡·이미자 노래

두형아 내동생아 너있는곳 어데냐

너를 잃은 부모님은 잠못들고 운단다

동에가도 네가 없고 서에가도 너 없으니

낮선사람 정을 붙여 엄마생각 잊었느냐

어머니의애원

여보세요 제발애원이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어린것을

제품에 꼭 돌려보내주세요 네

세상의 부모마음은 모두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정말정말 애원이에요

고사리 어린손아 노래하는 재롱아

너와함께 놀던동무 너를찾아 오는데

어느때나 돌아오리 죄도없는 어린목숨

애가타는 엄마품에 두형이를 돌려줘요

?4살배기 2代독자 납치후 돈요구 편지 배달
?두형이 찾기 확산 … 공연장서도 구호 '헛수고'

두형이를 돌려줘요 이 노래는 온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사건의 노래다. 아니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우리나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어린이 유괴 사건이다 지금은 유괴사건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처음으로 유괴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을수가 없었다. 자식을가진 부모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 사건으로 불안에 떨게 됐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국민들은 이렇케 못된 사건 없이 평화롭게 살아왔다. 그러다가 두형이 유괴사건을 접하고보니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하루라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어떻케 이런 범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범행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두형이 유괴사건은 1962년 9월 초순경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에 살고있는 사업가 조병각씨, 당시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조씨의 외아들인 장남 조두형, 당시 네 살 어린이가 실종되면서 잉태됐다. 두형이 부모는 두형이를 찾으려고 두형이가 갈만한 곳은 다 찾아봤지만 끝내 두형이를 찾질 못했다. 이렇게 두형이를 애타게 찾던 두형이의 부모들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혹시나 어디서 두형이가 살아있다는 기쁜소식이라도 오지 않을까 하며, 가슴을 조리면서 기다리는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렇케 기다리기를 며칠이 흘렀다. 필자의 지금 생각으로는 한 삼일이 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때 두형 네 집으로 편지가 한 통 배달 되었다. 두형이네 가족들은 이편지를 받으면서 혹시나 두형이가 살아서 잘있다는 기쁜 소식이라도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편지를 뜯어봤다.

이게 웬일인가. 편지 내용을 읽어 본 두형이네 가족들은 기절을 했다. 그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두형이를 죽여서 시신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우리가 두형이를 잘 데리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돈을 준비하여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리고 만약에 경찰에 신고할 시에는 당신의아들 두형이는 죽어서 싸늘한 시체로 당신네 집으로 배달이 될 것이다. 그러니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고서 돈이나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가 다시 연락을 할테니 그때에 장소를 정하여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였다.

두형이의 부모는 이 편지를 읽고 충격적인 내용에 혼절을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형이는 이대 독자였다. 딸만 낳았던 집에서 아들이라고는 두형이 하나인데 이렇게 유괴 를 당한 것이다. 그러니 두형이 부모는 물론이요 그의 가족들은 심정이 어떠했을까. 정신을 가다듬은 두형이 부모는 경찰에 신고하기로 입장을 정하고 그 다음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경찰에서도 다각도로 수사를 하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를 않고 수사는 점점 꼬여만 갔다. 이렇게 되니 두형이의 부모 심정은 어떠했을까. 온 가족이 아니 친척들이 다 모여서 전단을 찍어가지고 두형이를 찾는데 동서남북을 누비며 두형이 사진을 보이면서 두형이를 본 사람이 없느냐고 애타게 찾아보지만 두형이를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신문방송을 통하여 광고를 해봐도 두형이를 찾는데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방방곡곡 으로 전단을 돌리며 두형이의 사진을 붙쳤지만 그도 역시 아무런 효과를 보지를 못했다. 그러니 두형이 부모는 날이 가면 갈수록 초조하니 애타는 심정은 더해만 갔다. 이러다 보니 두형이의 아버지는 하던 사업도 전폐하고, 정신은 물론이요 육신까지도 몰라보게 망가져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끝내는 두형이 부모와 누나 할 것없이 식음을 전폐하고 쓰러지는 등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이렇게 되다보니 전국민이 알게되어 두형이 찾기운동을 펴고 전국에 있는 초중고등학교으로까지 두형이 찾기운동은 확산됐다. 그리고 전국민들까지도 내 자식같이 생각하고 두형이를 찾는데 힘을 모아 애타게 찾아봤지만 두형이는 찾을 길이 없었다. 이렇게 전국민들이 곳곳을 누벼도 두형이는 끝내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에 두형이네 집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도 그 후에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 그러니 경찰에서도 이 사건을 풀어볼? 길이 없었다. 아무리 단서를 찾으려고 애를 써도 아무런 단서가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정부에서도 두형이 찾기에 다각도로 힘을 썼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연예인들도 극장에서 공연을 하면서까지 무대에서 우리 다같이 두형이를 찾아주자고 외쳐봤지만 헛수고였다. 이렇게까지 전국민이 두형이 찾기에 한마음이 되어 애타게 찾았지만 헛 수고였다. 이렇게 두형이 찾기를 한지 1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이때 아세아레코드회사 최치수 사장이 두형이 찾는데 보탬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착안한 계획이 노래를 만드는 거였고, 이로써 두형이를 돌려줘요란 노래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명환 가요작곡가協 작사·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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