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가치 인정못받아 관리 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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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위치한 사충문을 지역문화재로 지정 관리돼야 한다는 여론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일문사충(一門四忠) 또는 사충문(思忠門)이라고 하는 이 정문(旌門)은 문화재적 의의가 높지만 비지정문화재라는 이유로 지자체의 관심 밖에 있어 효율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진천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한 충신들의 넋을 기리고 사충문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하루빨리 지역문화재로 지정돼야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은 물론 관광객과 주민들의 견학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정문은 조선 영조 때 충신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천추와 그의 아우 천장(天章), 아들 성추(聲秋), 조카 성옥(聲玉) 등 4명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진천 사석리 여사마을에 거주하던 김천주 등 4명의 일가(一家)는 영조 4년(1728년)에 이인좌가 난을 일으켜 청주와 진천을 함락하고 그 일당인 이자경이 자칭 진천현감이 돼 백성들을 괴롭힐 때 의거의 뜻을 품고 동지들을 모아 무기도 없이 괭이, 쇠스랑 등 농기구를 들고 진천을 탈환 하기 위해 습격해 싸우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배 모두 전사했다.

이 같은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영조는 천추, 천장 형제에 대한 정문(旌門)을 내리고 향제(享祭)케 했으며 그후 고종 22년(1885년) 성추, 성옥도 병정(倂旌)케 함으로써 '김씨사충문'이라 불리게 됐다. 이들은 싸울 때 쇠스랑으로 싸웠다 하여 속칭 '쇠스랑 충신'이라고도 한다.?

맛배지붕의 목조 기와집 2평 규모인 이 정문은 1958년에 개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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