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국적법이 시행되기 직전 한국 국적을 포기한 1077명의 명단이 관보에 올랐다. 이 가운데 남성이 98.6%인 1288명으로 18세 이상은 7명에 지나지 않고 거의 전부가 18세 이하인 것을 보면, 이번 국적 포기사태야말로 병역 기피 목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때를 같이해서 취업포털 잡링크가 전교학신문과 공동으로 대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적 포기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45.8%가 '필요하다면 국적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응답한 사실이 밝혀졌다. 개정 국적법은 이중 국적자들의 병역 기피 목적의 국적 포기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이번에 부모들에 의해 대신 결정 지어진 국적 포기는 맹목적적인 자식 사랑 탓으로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거침없이 팽개치는 이들의 행태에는 거부감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멀쩡한 대학생의 절반가량이 국적 포기를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5년 6월 당시 공보처가 코리아 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참전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국의 20~30대 남성 가운데 80.1%가 '그렇다'고 응답한 사실이 있었다. 지난날 젊은이들은 비록 정부에 대한 불만이 싸여 있고 또한 반정부 데모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을지라도, 국가에 대한 신념만큼은 확실한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이 간직하고 있는 '필요하다면 국적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식의 사고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어쩌면 2년 병역의무가 지겨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국에서 태어난 처지가 마땅치 않다거나 나라 돌아가는 꼴이 싫어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절실한 이유가 있다손치더라도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은 여간 볼썽사나운 게 아니다.

이들에게 조국은 과연 무엇인지 물어 보고 싶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는 힘의 원천은 튼튼한 자주 국방과 함께 애국애족 정신을 일깨워 주는 시온주의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나라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면 비록 해외에 유학 중인 젊은이들까지도 자진 입국해 전쟁터로 달려가는 게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을 부럽게 여길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포항시 용흥동 탑산에 서 있는 포항지구 전적비와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6·25 전쟁이 터지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학도병이 무려 7000여명에 이른다. 국내 학생 5만여명과 재일교포 학생 641명도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쩌다 우리 젊은이들의 정신상태가 이 지경이 됐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가수 유승준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해서 말썽을 빚었던 것이 엊그제 일 같다. 유씨는 병역 기피를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유씨 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얼마 전 육군 제26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한 윤여헌씨 같은 한국인도 있어 우리의 미래는 양양하다. 그는 지난 84년 아버지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태어나 4세까지 그곳에서 자란 이중 국적자다. 그런데도 윤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군에 입대한 것은 "비굴해지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어머니의 격려가 한몫을 더했다. 외국 유학의 꿈을 갖고 있는 아들에게 "군 생활도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 힘든 외국 유학은 어떻게 혼자 해내겠느냐"며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윤씨 같은 장한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조국에 대한 배신은 한마디로 수치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는, 어차피 한국인으로 살다가 한국인으로 죽어야 할 운명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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