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준 대전시미술협회장

모 선배가 한참 전 결혼을 앞두고 그 당시 본인보다 30여세 많은 결혼생활에 찌들고(?) 고수가 된 선배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시 젊은 나이로 돌아가 결혼을 하신다면 어떤 배우자를 고르시겠습니까'하고.

돌아온 대답들은 거의가 대동소이했는데 요약을 해 보면 다음의 몇 가지 였다.

첫째가 건강한 상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천하일색 양귀비나 천하미남 주윤발이와 살아도 4∼5년만 지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요, 지나가는 여자는 다 예뻐 보이고, 믿음직한 남자를 보면 눈이 한 번 더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요 상대에 대한 배려요 예의(?)인 것인데, 결혼생활이 으슥한 즈음이면 배우자의 건강이 중요한 것인 바 고된 사회생활 속에서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한 그릇의 밥이 기다려지는 것이 당연지사다. 배우자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혼자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라치면 곱디 고운 얼굴보다는 튼튼한 건강에 더 마음이 간다는 것이다.

둘째는 대화가 되는 상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눈이 맞아 눈이 뒤집어지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이고 고슴도치 털도 간지러울 터이라 '우르과이 라운드'라는 말이 우르과이에서 벌어지는 권투시합 라운드가 아니냐고 되물어 온다면 눈에 무언가 씌었던 시절에는 동문서답도 예뻐 보이겠지만 씌었던 꺼풀이 한 꺼풀 두 꺼풀 벗겨지고 난후에 수학의 시그마 리미트가 리그마 시미트로 되돌아온다면 매사가 짜증이요 답답하여 사사건건 고개가 외로 꼬인다는 것이다. 대화의 동질성이야 노력하면 된다치면 뜬금없는 총기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통이 있어야 된다는 것인데, 이른바 뼈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인 바 뼈대라는 것이 풀어 말하자면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유전인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이치인데 콩을 심고 나서 팥이 나왔다면 콩 속에 팥이 한 알 섞여 있었을 따름이지 콩이 팥으로 변할 리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수십년 결혼 생활 끝에 도달한 생활의 지혜(?)요 되돌릴 수 없는 진리인 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이요 '그려 맞어!'하면서 맞장구를 칠 수 있는 대목들이다.

매사 출발하면서 또는 시작하면서 모든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고 출발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결혼이라는 것이 서로의 부족한 것을 서로가 되 메우는 일이려니 하고 사는 것이 부부생활이지, 수십년 넘는 서로 다른 개성의 결합 속에서 아직도 깨가 쏟아지며 산다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말을 듣노라면 '에라이!'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말아버리는 것이 결혼 생활 수십년 된 사람들의 공통 심정일 것이다. 인간사 중요대사인 결혼에서도 위의 조건들을 모두 충분하게 갖추고 갈 수 없듯이 더군다나 인간의 생명 문제에 이르러서는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자연의 이치니 자연의 섭리니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이란 나면 죽는 것이고,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 지나면 가을 또 이어 겨울이오는 것이다. 진시황도 그토록 생과사의 경계를 뛰어 넘으려 노력했지만 주저앉고 말았다. 뜨거운 여름이 아무리 싫다한들 그 계절이 지나야 결실의 계절이 오는 것이 만고불변의 이치인 것이다.

이 지역 출신 황우석 교수 신드롬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주변 연구로 해서 수천만 인구가 다 살아 갈 듯이 난리요, 심지어 생가마저 단장하여 관광자원화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며 야단법석이다.

박찬호로 박세리로 박주영으로 한동안 냄비가 들끓어서 어린이들로 하여금 야구로, 골프로, 축구로 발길을 돌리게 하더니 그나마 자연과학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고는 있다. 하지만 양은냄비 끓듯 하는 일은 그 주변 모든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학문에만 전념해 온 양식 있는 그 분들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다 되가는 밥에 코 빠트리는 격이요, 초치는 소리라 할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열심히 노력하는 그들에게 꾸준히 성원과 지원을 보내주면 되는 일이다. 지금도 자기들이 속한 분야에서 정말 묵묵히 자기 일에 미쳐서 사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인문사회 쪽에서도 예술 쪽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자기 일에 파묻혀 월·화·수·목·금요일로 살아가는 이들이 주변을 살펴보면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세상의 어떤 소소한 물건이나 개체도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과학의 힘으로 자연의 섭리까지 바꾸려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이 세상을 살려다 보면 진시황 같은 욕심이 인간에게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도 세상은 하얀 것이 아니요, 칠흙 같은 어둠이 오래가도 새벽의 여명은 오듯이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야지 콩을 심어놓고 팥을 기다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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