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란 표심(票心)을 먹고산다고 했던가. 각 정당마다 4·30 재보선 결과에 대한 반응이 갖가지다. 그 내용엔 일리가 있는 것도 있지만 아직도 드러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그것은 선거 결과를 어떤 시각에서 분석하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다. 오직 아전인수격 입장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훗날을 도모하려는 '비수'가 번뜩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선거 결과에 대한 겸허한 원인 분석과 더불어 그에 따른 대응책의 모색이다.

여권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침통하기 그지없다. "아직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있다"던 이순신 장군의 심정을 피력한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의 어제 발언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만큼 절박한 여권의 심정을 대변해 준다. "뼈를 깎는 자성으로,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당을 혁신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을 통해 지도부 사퇴의 뜻이 없음도 밝혔다.

현재 여당 내에서 정리된 선거 패인으로는 전략공천의 폐해, 선거전략 미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한 대항마 부재, 지역주의의 벽 등이 꼽힌다. 일견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민심의 실체를 읽지 못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 요인으로 땅값을 들먹이는 견해까지 나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당이 행정도시 건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땅값이 오른 연기에선 여당이 이긴 반면 공주나 아산 등지에선 패배했다면 앞으로 여권이 땅값을 부추겨야 승리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논리도 성립할 것 같다.

후보 특성이 반영된 선거라고 규정한 청와대의 분석 역시 단면적인 시각으로만 비쳐진다. 그 요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상승세에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당정분리 차원에서 대통령을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키지 않았기에 후보를 상대로 한 투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직표가 단단한 후보가 당선됐다는 논리다. 낮은 투표율과 그간 재보선에서 여당이 불리했다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당의 정체성에 대한 시비는 간과한 듯싶다. 막판까지 후보교체 논란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그간 끊임없이 거론돼 오던 예측가능한 인물로 선거를 치렀다는 점이 이를 방증해 준다.

정당의 존립 목적이 정권 획득에 있듯이 선거란 어차피 이기기 위해 마련된 장치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승리라는 목표에만 심취한 나머지 정당한 절차까지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후보 선출 역시 민심이 동의하는 선이 무엇인가를 먼저 읽는 게 순서가 아닐까. 여권으로선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 아니라고 치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데 여권의 고민이 있다.

민심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악령(惡靈)'에서 암시한 대목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민은 명령하기도 하고 주재(主宰)하기도 하는 힘이다. 이 힘이야말로 최후까지 가려고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열망의 힘이며 동시에 최후를 부정하는 힘이다.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죽음을 주장하는 힘이다.' 바로 민심의 원천은 워낙 깊기에 함부로 재단하기가 힘들다. 민심은 결코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표를 통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결국 절묘한 구도를 만들어 낸다.

지난해 4·15 총선 당시 과반의석을 여당이 차지했지만 이번 재보선에선 국회의원 재선거 6곳 중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더구나 지방선거라지만 기초단체장 7곳, 광역의회 10곳에서도 여당 후보들이 전멸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국정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국정운영을 제대로 했더라면 하는 반성이 먼저 선행돼야 처방전도 제대로 나올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여권에 주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보다 치열한 자세로 '민생'에 다가서려는 덕목이 최우선임은 물론이다. "국민은 어리석은 듯하면서도 현명하다"는 이희승 선생의 '민주주의의 기로에 서서'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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