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용 시인·대전대 교수

대전 천변은 요즘 노란 유채꽃 물결이 망망대해를 이루어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기쁘고 윤택하게 해 주고 있다.

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에 따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사랑과 찬사를 받아온 식물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꽃에도 품계나 등수를 매겼는데 이는 꽃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 따라 결정되었다. 1품은 국화·연꽃·대나무, 2품은 모란, 3품은 월계·영산홍·석류, 4품은 작약·동백, 5품은 해당화·파초, 6품은 백일홍·홍두견 등으로 분류하였고, 1등은 운치나 절개를 의미하는 매화·국화·연꽃·대나무, 2등은 부귀를 의미하는 모란·작약, 3등은 운치를 자랑하는 치자·동백, 4등은 소철, 5등은 번화한 석류·도화·해당화, 6등은 진달래 · 백일홍, 7등은 목련·앵두, 8등은 옥잠화·봉선화, 9등은 금전화·화양목 등으로 분류하였다.

어쨌든 어느 꽃이든 느낌과 정서는 동·서양은 물론 고대 원시사회나 현대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미(美)에 대한 추구 본능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긴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피는 꽃에 큰 즐거움을 느꼈는데 이는 사랑, 아름다움, 번영, 영화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름다운 여자나 좋은 일, 영화로운 일에 비유하여 예쁜 여자의 얼굴을 화용(花容)이나 화안(花顔)이라 하고, 아름답거나 좋은 시기를 '꽃 같은 시절'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그 집안에 꽃이 피었다", "웃음꽃이 핀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어디 그 뿐인가.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내리는 어사화(御賜花)가 있었고 오늘날은 일반적으로 축하와 위문에도 꽃이 선택되고 있다. 이 밖에도 국화(國花), 교화(校花), 사화(社花) 등 한 국가나 집단을 상징하는 역할에 꽃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꽃은 인간의 삶 속에 알게 모르게 긍정적 정서가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꽃 재배는 '동사강목'에 백제 진사왕 때인 390년 궁실에 연못을 파고 동산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꽃을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신라 문무왕 때 꽃을 심었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꽃의 역사도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유채꽃을 말할 때면 사람들은 먼저 제주도를 떠올린다. 그것은 내륙에서 볼 수 없는 광활하게 펼쳐진 유채꽃의 들녘이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거리는 신비경을 맛보았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제주도 서귀포 출신인 고 김광협 시인은 생전에 "제주도의 봄을 노랗게 물들여 꿈처럼 피는 꽃이긴 하지만, 본디는 제주도의 꽃도 서귀포의 꽃도 아니다. 50년대 말경 서귀포의 한 이름난 독농가가 가꾸기 시작한 것이 온 제주도에 퍼져 이젠 봄이면 '제주도 유채꽃'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원산지로 알려진 이 유채꽃은 16세기경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것으로 관상용이 아니라 기름을 짜기 위해 심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유채꽃은 품종이 10여 종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어느 품종이든 꽃의 색깔은 '노란빛' 하나로 표현되고 있다. 비록 유채꽃이 품격이나 등급에는 들지 못했다 해도 꽃 모양이 아름답고 특히 색깔은 '노란빛'만을 지녀 부드럽고 따뜻한 정서를 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전 천변에는 요즘 유채꽃을 감상하거나 아름다움을 영원히 추억하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가족이나 젊은 연인들이 나와 사진 찍기에 분주한 '유채꽃 천변'은 하상도로를 지나는 무수한 차량들에 위험한 지역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운전자 한 사람 불평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성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벗고 잊었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시민들의 환한 얼굴을 보면 최일환 시인의 '유채꽃 꽃길에서'가 떠오른다. "유채꽃 고운 / 밭둑길로 / 혼자 지나 가다가 / 꽃이랑 어디선가 / 들릿 듯 들릿 듯 / 누구의 음성일까 // 눈부신 햇살 타고 / 노오란 꽃물결 위로 / 보일 듯 말 듯 / 가볍게 사압분 / 걸어오신 분 누구일까"??

이렇게 다정하게 다가올 듯한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1년 내내 유채꽃이 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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