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에서는 일본 규탄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 대한 반일 감정이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번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일본 소니사의 대형 광고판을 뜯어내면서 일본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 주말엔 베이징과 광저우, 선전 등에서 3만명 이상의 군중 시위가 벌어졌다. 일본 대사관 유리창이 박살나고 일본인 2명이 부상을 입어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1919년 중국에서 일어난 '5·4운동'의 실체를 보는 것만 같다. 당시 친일파·매국노 처벌 등을 요구하는 학생, 지식인들로 구성된 대규모 시위대가 친일파 요인들의 저택을 습격하면서 군대와 충돌했고, 이는 결국 중국 현대사에서 반일·애국 운동의 이정표를 설정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중국의 5·4운동은 우리의 3·1운동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측면에서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열강들에 의해 재편된 베르사이유 체제에 도전한 최초의 저항운동이 바로 3·1운동이기 때문이다. 5·4운동의 의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에 이어 1999년 대규모 반미집회에 이르기까지 태생적인 차원에서 파급효과를 미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의 동북아 정세는 1세기 전의 상황을 빼닮았다. 그 당시처럼 패권주의로 부활하고 있는 일본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외교전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게 강대국 일방에 의해 세계질서로 포장되고, 그 결과 주변국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이번 반일 시위는 다각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5·4운동과 상통하는 구석이 많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나 시위의 주동 세력이 베이징대 학생들이라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반일감정이 아니라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반미 시위에 시달려 본 쓰라린 경험을 떠올렸을 법하다. 속내야 어찌됐건 드러내 놓고 일본 편만을 들 수 없는 처지다. 일본의 왜곡 교과서에 대한 한국과 중국 반발에 대해 "미국은 제기되고 있는 우려 사항에 대해 알고 있다"며 일본에 대해 처음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순방 때만 해도 일본을 감싸고 돌던 자세와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결국 북핵 해결을 위해선 한-미-일 3각 공조를 유지해야 하고, 미국 의도대로 유엔 개혁의 파고를 넘기 위한 제스처로 비쳐지고 있다.

결국 일본이 내친 김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던 전략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거기엔 독도와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들어 한국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저지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섰고, 일본의 최대 후원국인 미국이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상황논리가 지배한 탓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역시 자신의 국익을 먼저 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진정 세계의 지도국이 되려면 도덕적으로도 흠결을 남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오히려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나 자살 어뢰, 그리고 전함 야마토를 '옥쇄(玉碎)'라는 미명 아래 떼죽음당하도록 했던 과거사를 미화하면서 군사 대국화를 노리고 있다. 독도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영토 침탈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선 없는 구석기 유물까지 뚝딱 조작해 내려다 망신을 당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자신의 저서인 '국화와 칼'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그들은 그들이 억울하게 졌다거나 승전국들이 단지 힘이 강해 자신들이 졌다거나 하며 자신들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러한 일본인의 행동 동기의 특성을 간파한다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원래 다분히 기회주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그런 야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양심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젠 깨달을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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