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면 백제군사의 함성이 ···
아마도 역사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옛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떠올려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런 의미에서 고인(古人)들의 삶의 모습과 사회상을 고스란히 종합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옛 산성(山城)들이 그것이다.
성벽의 축성 방식을 통해 당시의 건축기술을 알 수 있고, 성내에서 발견되는 각종 유물을 통해서는 그 당시 사회모습까지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이 축조된 지역의 자연적·지리적 여건을 통한 그 시대의 전투방식과 군사 이동로를 추정해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조까지 다양한 토기와 기와의 파편이 출토돼 오랜 시간 역사의 현장에 서 있었음을 짐작케 해 주는 노성산성(魯城山城·사적 제393호)이 있다.
노성산성은 노성산 정상 부근에 축성된 전형적인 삼태기형 산성으로 동쪽으로는 연산, 남으로는 논산시내, 서쪽으로는 부여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성벽의 축성에 사용된 돌들이 네모지게 잘 다듬어져 있고 원래의 지세를 적절하게 이용해 성을 쌓는 등 축성 위치나 규모로 인해 인근의 다른 산성에 비해 그 중요성이 일찌감치 부각됐었다.
특히 산성이 자리한 노성면이 백제 멸망과 관련이 깊은 황산벌과 인접해 있고 전체 성의 둘레가 이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인 900m에 달해 학술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문헌 속에 존재하는 노성산성에 관한 기록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록 속의 편린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사실들은 적지 않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노성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1950척이고, 높이가 8척이며, 그 안에 네개의 우물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탑사(塔寺)가 성산에 있다'란 말로 성내에 탑과 함께 사찰이 존재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봉화대가 설치됐음을 알 수 있는 기록도 있다.
'성산 봉수는 남쪽으로는 은진현의 황화산과 응하고, 북쪽으로는 공주의 월성산과 응한다'로 노성산성 안에는 봉화 관련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과, 이 지역에서는 최고의 조망권을 지닌 전술적인 가치가 뛰어난 중요 거점이었음을 가늠케 해 준다.
현재에도 성의 동벽 중간 부문에 둘레 50m의 사다리꼴의 석축이 남아 있어 옛 봉수대로 사용됐음을 증명하고 있다.
성내에는 또 인위적으로 조성된 평탄면이 곳곳에 자리해 오늘날에는 전망대 역할을 했던 망루나 물 관련 시설 등이 존재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한 곳 등이 8군데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성 보수·정비공사 중 성의 옛 남문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발굴조사를 통해 남문의 구조와 성내·외를 연결하는 방법, 성벽과의 관계 등을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발견된 성문터의 돌 쌓은 기법이 들여쌓기 방식으로 돼 있는데다 사람들의 눈에 띄기 전까지는 흙에 덮여 있어 원형보존 상태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문화재 전문위원이 현장 조사차 이미 다녀갔고, 앞으로 전체적인 발굴조사와 고증 복원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인 복원 공사가 진행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