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봉 충북NGO센터장
[화요글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들에게는 기대를 줬던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약속이 6개월이 되도록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인천공항공사의 직접 고용을 최소화하려는 소극적 태도와 정규직 노조의 반발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달 23일 열린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에서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비정규직 9000여 명 중 3221명을 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청회장에 참여한 공사 정규직들은 야유와 고함을 보냈다고 한다.

정규직의 입장에서 보면 입사시험을 치지 않은 비정규직이 '본사 정규직화'가 된다는 것은 쉽게 용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학벌과 스펙을 쌓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취업한 본인들의 노력이 무시당했다는 생각, '시험'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생각,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는 무임승차를 양산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또 얼마 전 중등 예비교사 모임은 정규직이 되고 싶어 하는 기간제 교사들을 ‘교직계의 정유라’라고까지 표현하며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다. 이 주장에 대다수 현직 교사들도 동조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데 수십년을 비정규직으로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의 고용안정에 반대하는 이유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비정규직이 나의 고용안정성과 임금에 접근하는 것 자체, 즉 '격차의 축소'를 인정하지 않고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차별과 배제를 당연시하는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회라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인천공항 정규직들이 주장하는 시험이라는 제도는 채용과 승진을 위한 하나의 평가 방법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것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 부모의 조력을 받아 학업에만 전념하고, 고비용의 과외가 가능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현재의 선발시험제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우리사회는 시험에 통과한 사람은 과도한 특권의식을, 실패한 사람은 한평생 열패감으로 서열화 된 삶을 살아간다. 결국 '시험 공화국'의 승리자들은 모든 차별과 격차를 '경쟁'과 '능력'의 논리로 정당화시킨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당한 차별의 금지는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한 국가와 사회적 과제이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는 정규직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와 노력을 기울여 경쟁을 치르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현재의 지위가 자신이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분상승 사다리 신화를 뛰어넘어 개천의 미꾸라지들이 서로 협력해 함께 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와도 대다수는 여전히 미꾸라지로 살아서는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없다. 사람의 능력은 그 수만큼 다양하고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뒤에 오는 사람의 사다리를 걷어 차는 것에 문제의식이 없다면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 행복할 수 없는 정글 같은 사회와 만나게 된다. 지금 이대로 계속가면 협력해서 함께 살아야 할 이웃과 동료를 경쟁상대로만 인식하고 배려와 공존, 나눔과 협동의 가치가 설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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