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본사 회장

경상남도 김해시 진양읍 봉하리.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 후 처음으로 고향을 찾아 선영에 참배하고 동네 사람들과 잠시 어울렸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국밥과 돼지고기를 대접했고 어른들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도록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주문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이런 분위기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고 '꼭 성공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요즘 그의 고향 봉하 마을에는 찾아 오는 손님들이 많다. 특히 제일 큰 관심의 대상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조상묘와 태어난 집. 어떤 연유에서 이 땅이 대통령을 배출했는가 하는 풍수지리(風水地理)적 해석을 얻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동네 사람들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특유의 시골 국밥이지만 그 따끈한 국밥을 먹으며 방문객들은 '대통령의 고향'이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고향만 그런 게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전라남도 하의도 섬사람들도 그렇게 기뻐하며 자부심을 부풀렸었다. 사물놀이가 신바람나게 섬마을을 흥분시켰고 잔치도 계속 됐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도 거제도가 떠나갈 듯 했고 노태우, 전두환, 심지어 최규하 전 대통령 때도 비록 장충체육관에서의 간접선거였지만 그의 고향 강원도 원주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이처럼 자신을 대통령으로 낳아 준 고향인데 퇴임 후 고향으로 가는 대통령이 하나도 없다. 모두 서울에 남아서 이러쿵 저러쿵 정치발전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만 생산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전직 대통령은 4사람.

그런데 이제 며칠 후면 퇴임할 김대중 대통령까지도 서울에 남게되면 5사람이 되는 셈이다.

벌써 김 대통령이 입주할 서울 동교동의 사저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끝냈다는 보도다. 과거 빨간 지붕의 1층 기와집 대신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건평 199평의 저택으로 모습을 바꾼 것. 그래서 너무 호화롭다는 시비도 있었다. 경비초소도 만들었고 골목과 집 주변에 CCTV도 설치했다. 주민들 가운데는 이런 불편함에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주택은 최근 연세대에 기증한 아태재단 건물과 이어져 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면 뜨거운 환영도 받고 지역의 분위기를 위해서도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성공한 대통령이든 실패한 대통령이든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퇴임하면 워싱턴을 떠나 자신을 대통령으로 낳아준 고향으로 간다. 기념재단이나 기념도서관을 지어도 고향에서 한다. 워싱턴에 남아 후임자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고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다. 드골 프랑스 대통령도 하야 후 미련없이 파리를 떠나 고향으로 갔다.

우리 나라에서도 과거 영의정이나 판서 같은 높은 관직에 있다가도 벼슬이 끝나면 '낙향(落鄕)'이라 하여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서울에 남아 있는 것은 하급 벼슬아치들로 남산주변에 몰려 살았다. '남산골 샛님'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것.

김대중 대통령과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이 기회에 고향으로 가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어떨까. 요즘 흔히 말하는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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