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국정 공백 상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번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박근혜 대통령은 차라리 탄핵을 당하더라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으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비박 간 갈등이 점입가경인 가운데 정국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비친다. 야당 또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면서도 오락가락 행태로 정국을 꼬이게 한다. 국민만 답답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어 안타깝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모든 해결방안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전제아래 대안으로 부상한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야'나 '퇴진'이 헌법정신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이 검찰 및 특검의 수사를 수용한 이상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거국 총리를 대통령 권한 대행(헌법 71조)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략적 해석이라며 수용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11·12 100만 촛불 민심에서도 확인됐듯이 대통령 퇴진 민심과는 판이하다. 최순실 씨와 그 주변 세력에 의해 헌정질서를 유린한 그 자체만으로도 엄중하다. 그런데도 갈수록 여권의 상황은 오히려 안이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박 대통령 지지율이 헌정사상 최저인 5%까지 추락한 데 대해 "앞으로 대통령의 노력에 따라서 회복될 수 있는 지지율"이라고 맞섰다. 시간 끌기에 나선 형국이다.

그렇다고 야권의 정치력이 이 난국을 풀기에는 미덥지 않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어제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그간 '2선 후퇴'에서 '즉각 퇴진'으로 당론의 수위를 올린 연장선상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하기로 했다가 당내 반발로 이를 철회한 데에 대한 후유증이 크다. 주요 야당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니 정략적인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지적이 넘쳐난다.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일정을 늦추거나 수사 방식을 서면조사로 해달라는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의 주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엄정한 진상규명은 물론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 어느 것도 소홀해선 안 될 일이다. 더 이상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머뭇 거릴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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