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길 잃은 중장년
<上> 산업화 주역은 옛말
“한국경제 뇌관으로 급부상“
“정장차림 쓰레기 수거 나서“
“가족들에 퇴직 이야기 못해“
“막둥이 녀석 지금 고등학생“
“대학 등록금부터가 큰 걱정”

전세계적으로 전쟁 직후에는 정부차원에서 사회적 안정을 위해 출생율을 높이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1955~1963년이 이에 해당하는데 그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다. 이들을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콩나물교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입시전쟁에 시달렸지만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퇴직연령이 앞당겨지면서 마침내 고용의 절벽 끝에 서게 됐다.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직업훈련을 비롯 실업수당 등 고용안전망을 보다 튼튼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충청투데이는 3회에 걸쳐 ‘길 잃은 중장년’이란 주제로 중장년층에 대한 취업정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 보슬비가 내린 27일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주택가에서 만난 이씨는 새벽부터 모은 폐자원을 고물상에 내다 팔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있다. 이 리어카 한가득 모아 고물상에 내다 팔면 이씨는 2만~3만원을 받는다. 김영복 기자 kyb1020@cctoday.co.kr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18일 새벽시간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한 주택가 골목길에서 만난 이모(56) 씨. 정장 차림에 까맣게 물들은 목장갑을 끼고 폐간판을 분해해 리어카에 싣고 있었다. 혹시나 옷가지와 얼굴에 그을음이 묻을까 조심하는 모양새다.

그는 청주지역 A 기업에서 30여년이 넘도록 근무를 하다 두 달전 회사를 나왔다. 다른 직업을 갖거나 회사가 못마땅해서 자발적으로 퇴사한 게 아니다. 최근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후배들의 승진길에 걸림돌(?)이 된다며 사측에서 1961년생까지 퇴직을 권유했고 1960년생인 이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사측은 구조조정의 0순위로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에게 퇴직을 권했다. 그는 퇴직금으로 1억 2000만원 가량을 받았지만 아직 가족들에게 이야기 하지 못한채 마냥 쉴 수가 없어 고물수집을 하고 있다.

이 씨는 “회사에 어떻게 해서든 붙어 있으려 했는데, 결국 퇴사를 하게 돼 씁쓸하다”며 “당장의 생활비도 그렇지만 집에 막둥이가 고등학생이다보니 당장의 대학 등록금부터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퇴직금과 대출금을 합한다 해도 할만한 일이 마땅치 않다”면서 “남들처럼 노후대책을 세워놓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이처럼 고용의 절벽끝에 선 베이비부머가 한국경제를 넘어 지역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2030 못지 않게 5060도 고용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인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젊은 세대로부터 ‘짐짝’ 취급을 받고 있다. 충북도와 청주시에는 이 씨와 같은 중장년들의 눈물을 닦아줄 디테일한 취업 지원정책이 아직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정작 자신들의 노후 준비는 부족하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며 “지자체들도 급격한 노령화 사회에 대비한 거시적인 플랜이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어 “산업화의 주역으로 불릴 만큼 베이비부머세대는 전문성이 뛰어나다”며 “이들이 지닌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김영복 기자 kyb102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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