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이근규 제천시장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는 백성에 대한 세종대왕의 사랑이 절절히 배어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이런젼차로 어린백성이 니르고져 홇베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펴디 못할노미하니라 내 이랄위하야 어엿비녀겨 새로 스물여듫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수비니겨 날로쑤메 편안케 할 따라미니라- 우리나라 글이 중국말과 달라서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이러한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할 말이 있어도, 제 뜻을 쉽게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이 28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얼마나 가슴을 두드리는 말씀인가. 당시 한문이 워낙 어려워 조선시대에도 양반이 아니면 글을 배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글을 제대로 모르는 불쌍한 백성들은 송사에 휘말려도 제 억울함을 제대로 적어 올리지 못하거나, 관가에 가서도 제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삶이었다. 이런 '어린' 백성들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세종의 따스함과 사랑이 훈민정음 창제의 깊은 내면이다. 양반으로 나뉘어 신분의 귀천이 분명하던 계급사회에서, 약자를 오히려 더 배려하고 존중하던 군왕의 어진 마음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은 세계 수많은 언어들 속에서 유일하게 그 근원이 밝혀져 전해지고 있는 말과 글이다. 여기에 더해, 그 창제의 기본 정신이, '어린백성'의 억울함을 안타까이 여긴 세종대왕의 긍휼함에서 비롯된 것이니,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게 바로 측은지심이고 맹자가 말하는 '인(仁)'이다.

조선조 말기 철종 승하 이후에 동네에서 놀던 꼬마가 갑자기 왕이 됐다. 바로 흥선 대원군의 아들인 그 고종이 대궐에서 나온 가마에 올라 궁궐로 들어가는 중에, 저잣거리로 나서자 함께 놀던 동무들이 따라왔다.

"재황아 어디 가니?"라며 여느 때처럼 부르며 몰려들자 호위군사들이 아이들을 내어 쫓았다. 그러자 나이 어린 고종은 가마를 멈추게 하고 임금으로서 첫 명령을 한다.

"오늘부터 제가 임금이라지요? 임금은 백성을 위하는 일이 첫째이니 저 아이들을 다치게 하지 마오. 반가와 그러는 것이니 그대로 두도록 하오."하고는 거리로 내려와서 그 동네친구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엎드리고 있던 백성들이나, 어린 왕의 시종들은 감개무량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쳤다. 어진 임금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국가이던 지도자이던 힘없는 국민을 우선으로 보호하고 손잡아 용기를 함께 나누는 일이 우선인 것이다. 백성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고, 서민대중과 동고동락할 때 그 지도자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법이다.

다사다난했던 을미년(乙未年)을 보내며 여전히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를 돌아보니, 과연 우리에게 백성을 위해 가슴아파하는 참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유·불리 보다,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하여 가치와 신념을 지키고 '사람'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세종대왕 같은 따뜻한 지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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