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기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두 달 전 공직생활을 마감하면서 앞으로는 '사회인'의 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나도 자연인이다!'라고 외친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미 자연인이 아니다. 월급 받는 사회인으로 512개월을 지낸 사람이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 자체가 너무 경솔하고 섣부른 짓이었다. 많은 지인들이 "이 친구 또 허풍을 치는구나!"하고 실소했을 것이다.

이 '다짐'과 '허풍'과는 관계없이 언제부턴가 산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TV 프로그램을 자주 보게 됐다. 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40~50대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서 나도 그 축에 끼어 보겠다는 가당치도 않은 욕심에다가, 산중(山中)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지내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채널 선택의 자유를 상당 부분 박탈당한 데 대한 저항이다. 뉴스에 별 관심이 없게 된 지는 꽤 되지만, 어쩌다 마주치는 '보기 싫은 뉴스'가 다른 채널에서도 똑같이 방송될 땐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기껏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되는 프로그램에는 그 잘난 해설가들이 설치는 통에 또 채널을 돌린다.

보기 싫은 채널도, 반갑지 않은 뉴스와 앵커도 억지로 보아야 하는 시청자의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막강 TV'는 모른 척 한다. 오히려 사람들의 머리(腦)를 씻어낸(洗) 결과가 여론이라는 수치로 '이상하게' 나오는 걸 즐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TV를 보고 듣기만 하는, 수용성(受容性) 시청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들은 기가 막히게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뉴스를 안 본다는 내 말에 "그건 현실 도피요, 지식인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다"라고 반박을 하던 Y형의 인내심이 부럽기도 하다.

결국 수십 개도 넘는 채널 중에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EBS나 자연 다큐멘터리, 세계 각국 여행기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이래서 자주 접하는 '자연인'은 출연자들의 특유의 넉살과 위트로 보는 재미를 더 한다. 하지만 속세를 떠난 자연인들에게도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건강문제부터 경제문제, 가족 간의 갈등, 사회 부적응 등 가지가지다. 그래도 그들에겐 희망이 있다. 떨어져 있는 가족과의 재회에서부터 건강회복 등 출연자들의 미래는 밝다. 진짜 자연인들이 이런데도 불과 두어 달 만에 자연인임을 포기한 스스로가 참 한심하다. 사실 안 보고 안 듣고 무관심하고, 될 대로 되어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트럼프도 푸틴도 시진핑도 궁금하고, 김정은은 더더욱 궁금하다. 그렇게도 보기 싫어했던 그 채널, 그 앵커는 여전히 건재하다. 자기가 가장 옳다고 자처하는 '전문가'들도 여전히 등장한다. 그들 가운데 과연 누가 잘 '보여' 좋은 자리에 갈지 그것도 엄청 궁금하다. 게다가 누가 어떤 막말을 하고 누가 언제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께 죄송하다 할지 그것은 더 궁금하다.

역시 나는 '자연인'이 아니다. 어떤 신문, 어떤 TV가 싫다는 친구에게나 '4년 선량'들을 성토하는 택시 기사에게도, 언제든 맞장구 칠 수 있는 그냥 보통 '사회인'이다. 거리의 홍삼박사(洪三朴四) 같은 범인(凡人)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6월 선거에는 비록 1표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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