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출동건수 평소 4배
추석 연휴도 없이 근무해야
가족·여자친구와 다투기도
근무 맞춰 차례시간도 바꿔
고독감 더 심해지는 명절
자살 현장 출동땐 마음 아파

▲ 대전 서부소방서 갈마119안전센터 소속 민정환·이상화·황성영 대원(왼쪽부터).
“추석엔 하루평균 출동 건수가 평소보다 4배 이상 많아집니다. 명절이 끝나고서야 시간을 내서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고향에도 다녀와야겠습니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21일 만난 황성영 소방대원(대전 서부소방서 갈마119안전센터 소속)은 올해로 11년째 추석연휴를 반납하고 화마와 싸우기 위해 대기하는 베테랑 대원이다. 슬하에 8살난 아들과 5살 딸을 둔 황 대원은 “소방관들에겐 근무 스케줄상의 휴일만이 진짜 휴일”이라며 “신혼 당시엔 아내를 처갓집에도 마음대로 데려다주지 못해 자주 다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족 모두 3조2교대 근무라는 직업 특성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해탈에 도달했다”며 “그래도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제때 찾아뵙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명절을 전후로 동창이나 고향 친구들을 만나 그간의 회포를 푸는 소탈한 시간을 꿈꿔본지가 까마득하다는 황 대원은 “그래도 우리 덕분에 시민들이 안심하고 명절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보람은 더욱 크다”고 밝혔다.

각종 위급상황 간 구조업무를 맡는 이상화 구조대원 역시 9년째 연휴를 반납하고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귀성·귀경길 도로 정체 속에서 교통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원은 또 불규칙한 근무시간 특성상 일가 친척이 아예 차례 시간을 바꿔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차례를 안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추석 당일 출·퇴근 시간에 맞춰 차례를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의 교제기간을 이제 막 1년 넘긴 민정환 구급대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민 대원은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연휴기간 연가를 다 쓰고 싶지만 빈자리를 메워야 할 동료들 생각에 자제하게 된다”며 “이런 이유로 여자친구와 자주 다투기도 한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러나 추석연휴 기간 기억에 남는 사례를 들려달라는 질문에 민 대원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셨다.

그는 “추석이나 설 명절이면 자살 기도 현장에 출동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다”며 “온 가족이 함께해야 할 명절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독거노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자의 맡은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이들이 추석연휴 기간 강조하는 것은 동일했다.

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인한 과도한 음주는 각종 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특별히 주의 바란다”며 “명절이 돌아올때마다 안전 사각지대가 더욱 불거진다는 현실이 때론 버겁기도 하지만 그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명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인희 기자 leeih5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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