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돈 쓰듯

이재면 대전시 맑은물정책과장 [시론]

2016-03-21     충청투데이
풍로(風爐), 워크맨, 카세트테이프, 삐삐. 과거엔 유용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춘 것들이다.

‘작두샘’도 이 중 하나다. 한여름 뙤약볕 농사일에 갈증이 목까지 차오를 때 마중물 한 바가지 퍼붓고 작두샘 물 품어 한껏 들이켜고 나면 시원하고 달달한 지하수가 더위를 식혀주던 시절이 있었다.

수로 보급이 덜 되고 불편했던 과거였지만 한편으로 지하수든 계곡물이든 별 거부감없이 물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물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물이 더 이상 차고 넘치지도 마냥 깨끗하지도 누구나 대가 없이 소유할 수 있지도 않게 돼버린 지금, 과거 그 물맛을 그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거대한 수력발전소로 여겨졌던 지구에 실상은 쓸 수 있는 물이 부족하다는 각성이다. 수자원을 보전하고 먹는 물의 중요성을 제고하며,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범지구적으로 협력하자는 목적으로 매년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은 UN에 의해 탄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도 4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했고, 가까운 충남지역은 제한급수까지 불사하는 초유의 물 부족 사태를 경험했다. 천우신조로 비가 내려줘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그만큼 물의 소중함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 물의 날’을 맞아 대전시도 3월 22일과 23일에 물의 날 행사를 연다. 해마다 행사는 있었지만 올해는 시민참여의 폭이 대폭 커졌다. 물 사랑 홍보를 위해 어린이집 아이들이 물 순환 송(song) 퍼포먼스를 펼치고,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한 그림공모전, 사진전도 열린다. 또 수질측정분석 체험, 수돗물 정수과정 체험, 절수기기 전시체험 부스 등을 설치해 체험의 장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식수난을 겪는 아프리카 남수단 야리 지역민에게 우물을 파주기 위해 ‘우물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흔쾌히 동참해준 후원업체들 덕분에 2개의 우물을 기부할 수 있게 됐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듯, 공동 우물에 모여 깨끗한 물을 먹게 될 그들을 생각하면 공직에 몸담고 좋은 일을 기획할 수 있는 게 큰 행복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행정, 대전시의 우물 기부가 본보기가 되어 착한 행정의 외연이 확대되고 도미노처럼 타 시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필자 역시 대전시 맑은물의 유지·관리를 책임 짓는 한 사람인 까닭에 그 같은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올해는 도시개발과 환경보전이라는 동전의 앞뒷면을 다 챙길 수 있도록 저영향개발기법(LID·Low Impact Development)을 도입한다. 현재까지 추진단계이고 가야 할 길은 많겠지만, LID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건전한 물 순환 도시 대전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실천 의지에 대한 시민의식이 없다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지듯 소중한 지구의 수자원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물을 돈 쓰듯’ 아끼고 절약해야 하는 시대다. 그만큼 물은 귀한 몸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담 하나 이야기하고 글을 마친다. 최근 독감 환자가 급증해 병원마다 북새통일 때, 필자도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 물론 의사의 처치와 처방이 있었겠지만 지시사항이 새삼 새롭다. 물을 자주, 많이 마시고 건조하지 않도록 가습기를 틀고 잘 것! 자그마한 예였지만 필자에겐 물은 곧 생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