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라면이 마구 땡기는 까닭
[충청로]
2015-12-02 나재필 기자
▶20대 청춘의 어느 언저리에서, 그것도 차디찬 자취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으면 웃음이 피식 나왔다. 눈물 같은 웃음이었다. 어쩌면 비참함을 숨기기 위한 반어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라면도 가난했고, 먹는 자도 가난했다. 라면도 외로웠고, 먹는 자도 외로웠다. 라면처럼 가난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음식은 흔치 않다. 시골에서 용돈이 오면 제일 먼저 라면을 샀고, 라면이 떨어지면 '라면 같은 라면'을 먹었다. 국수 7할에 라면 3할을 섞은 것이다. 라면 같기도 하고, 국수 같기도 한 이 정체불명의 맛을 보면 또 웃음이 나왔다. 면은 국수 맛, 국물은 라면 맛이었다. 어떤 날엔 한 끼에 라면 2~3개를 먹어치우기도 했다. 골방처럼 어둡고 퀴퀴한 그 창백한 국물이 마음 깊은 곳까지 위로한 까닭이다. 라면은 간식이 아니라 절박한 끼니였다.
▶아들이 아르바이트 첫 월급으로 라면을 사주었을 때 그 '진부한 선물'에 감격했다. 그 '애틋하고 짠해서' 목 넘김이 안 되는 해쓱한 국물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국물을 먹어야 슬픔이 가라앉는 건 유년의 식성이다. 라면에 갖은 식재료를 넣지 않는 것도 그때의 입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잊지 않기 위해서다. 라면을 보면 돌아보게 된다. 먹고 살기 힘들어 라면조차 맘대로 먹지 못했던 과거와, 라면만큼은 맘대로 먹을 수 있는 현재의 기억을 즐기는 것이다. 라면에 관한 소고는 혼자서 절망을 씹고, 외로움을 씹고, 눈물을 삼키던 값싼 운명과도 연결된다. 나를 눈물겹게 하던 그 맛, 꼬불꼬불 맹장을 뒤트는 유한의 욕망이, 겨울이면 더더욱 생각난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