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충청로]
2015-09-30 나재필 기자
▶어둠속에서 술을 마셨다. 몇 날 며칠 고민거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홍어 묵은지에 소주를, 하루는 몰트위스키에 치즈크래커를 곁들여 마셨다. 식도를 넘어가며 쓴맛의 절정을 거칠게 드러내는 소주, 부드럽게 혀에 감기다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땐 화락(火落), 뜨겁게 타는 맛을 보여주는 위스키.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거나, 배타적인 사이인데도 그 맛은 친밀했다. 문제는 다음날 여지없이 찾아온 두통이다. 왜 맛있게 마시고 작파했는데도 하루 종일 비몽사몽 하는지 고통스러웠다. 사흘째 되던 날, 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소주 두 잔을 마셨는데 나가떨어졌다.
▶희한하게도 잠이 들기 전에 무수한 단어들이 전광석화처럼 떠오른다. 그러면 이내 망설인다. 얼른 일어나서 메모를 할까, 아니면 내일 일어나서 옮겨 적을까. 이럴 땐 대체로 다시 불을 켜고 메모지에다 그 불특정 단어를 적어놓고 잔다. 다음날 옮겨 적는 건 게으름이자, 백발백중 실패다. 전날 밤 떠올랐던 그 단어가 당최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서 보면 더 기가 막힌다. 괴발개발, 그 어떤 글자도 명확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다. 무용지물이다. 귀찮아도 잊지 않으려면 벌떡 일어나 메모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메모하고, 다음날 그 메모지를 알아볼 수 없을 때 이 또한 두통이다. 두통이란 머리의 통증이 아니라 생각의 통증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