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한 권의 소설을
[염홍철의 월요편지]<23>배재대 석좌교수
2015-09-20 충청투데이
위에서 언급한 분들이 우려하고 있는 점은 대체로 인문학의 정신이나 방향의 왜곡이라고 보여져 일리가 있으나 인문학이 힐링의 도구, 흥행의 대상, 또는 자본과 결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인문학 붐이 일고 있고 또 많은 인문학자나 학술단체에서 ‘인간에 대한 학문’ 본연의 정신을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시도하고 있으며 인문학이 자칫 개인의 덕성 함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소도시에서도 인문학 학술동아리나 인문학 교실 등의 활동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평소 제가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이나 주변인들로부터 ‘무슨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고전소설을 먼저 읽으라고 권고합니다. 철학 서적은 이론적, 개념적, 논쟁적임에 반해 소설은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손쉽게 접근할 수가 있고 철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인류학 등 모든 분야가 녹아 있습니다. 안상현 씨의 ‘인문학 공부법’에 의하면 소설의 유형은 스토리 위주, 아름다운 문장 위주,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게 해주는 내용 위주로 읽어야 하는 책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 소설도 있지만, 때로 한 소설에 세 가지가 결합되어 있기도 합니다. 한 작가가 평생을 고민한 삶에 대한 가치들이 주인공의 말을 통해서 간결하고 집중적으로 드러나는데 이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가요?
수많은 소설이 있지만 그동안 제가 읽고 감명 받은 몇 개의 소설을 소개하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부활’, 셰익스피어의 ‘햄릿’,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헤세의 ‘데미안’, 빅토로 위고의 ‘레 미제라블’, 우리나라 작가로는 조정래의 ‘정글만리’, 김훈의 ‘남한산성’ 그리고 오래된 단편이지만 고교시절 저에게 깊은 감동을 준 최인훈의 ‘광장’까지 깊어가는 가을에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