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름 뒤에 숨겨진 무서운 발톱
[에세이]조일현 사진작가
2015-07-30 충청투데이
80년대 후반, 교정엔 삼월의 봄 햇살이 가득했지만 여기저기 삼삼오오 무리지어 앉은 신입생들의 표정엔 왠지 모를 불안이 가득했다. 그들의 웅성거림은 낮았고 어두웠다. 푸른 싹을 내밀기도 전인 노란 잔디 위에 터져 쏟아지던 최루탄 분말과 진압대와 대치하려고 여기저기 뜯어놓은 보도블록이 합세하여 더욱 참담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그해 삼월의 풍경.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사진 박스를 여는 순간 오래된 종이 냄새와 시쿰한 정착액이 콧속을 후비어 왔다. 퀴퀴한 내음이 아련한 청춘의 낭만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낭만의 냄새는 금새 옅어졌다. 다시 무거운 우울이 나를 감쌌다. 그 시절 불운이 비단 상아탑 만이었을까? 시내버스를 타면 내던진 짐짝처럼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다. 퀭한 눈이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라 흐릿했고 걸음은 무언가에 쫒기듯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청춘들마저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움큼의 필름이 아득한 그 시절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 온 시간이 사진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한 노동자의 선명한 해맑은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어디였을까? 엄혹했던 그 시절은 가고 없다. 분명히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 있다. 하지만 역사는 늘 반복되며 그 시대상은 현존한다. 한 세대가 지났지만 우리들 삶의 조건이 더 나아졌다고 확언할 수 있겠는가. 서른 해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은 문제가 있다. 여전한 불안이 있다.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고통들이 대기하고 있다. 오래된 사진을 보는 나를 응시하는 이 새로운 질곡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