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854)
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2003-01-20 대전매일
? | ? | |
? | ||
? | ? | |
? |
甲子士禍(30)
시정기에 성종의 말이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영의정 정창손이 아뢰기를,
"지금 주상전하께서 중전이 승순(承順)의 도리를 잃어 종묘의 주인이 될 수 없으므로 폐서인하시겠다고 교시하오시니 신등은 어떻게 아뢸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말이었다.
그 다음에 발언한 것은 한명회였다.
반대는 아니하고 찬성에 가까운 말이었다.
왕은 시정기를 읽다 말고 한탄하였다.
"이자들이 이미 다 죽었으니 원수를 어떻게 갚을고!"
다음에 윤필상이 폐비 처분을 찬성한 발언이 기록되어 있었다.
"전하, 사세(事勢)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쩌는 수가 없사옵니다. 전하의 집안 일이오니 신등에게 가부를 하문하실 것 없이 어의(御衣)대로 처분하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왕은 현기증이 나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머니의 원수가 지금까지 버젓이 자기 옆에서 국사를 논한 원로대신 윤필상이었다니!
왕은 시정기를 계속하여 읽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대신이니 시종이니 대간이니 하는 신하들은 모두 자기 어머니의 원수일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생각같이 그렇게 쉬운 노릇이 아닐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