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순한 것들이 그립다
[에세이] 조일현 사진작가
2015-03-12 충청투데이
신기하게도 내 집 마당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포도밭이었다. 둔덕을 따라 걷다 보면 얼마 오르지 않아 듬성듬성 너럭바위가 있는 산등성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혼자 놀다 해가 설핏해서야 내려오곤 했으니 팔자로 보건대 강태공이 부러웠을까 싶다. 나의 게으름 탓도 있었지만 마당에 돋는 들풀이며 들꽃 하나라도 다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봄이 오면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름 모를 꽃들부터 채송화가 마당 한가득 무리지어 피어나고 또 스러지기를 반복하다가 종내 망초 꽃에 자리를 내주곤 하던 마당이었다. 이쯤 되면 내게 인심을 나눠주던 이웃 주민들도 대개 외면하게 된다. 더러는 풀을 베고 마당을 정리하는 요령을 가르쳐주시는데, 풀은 베고 나면 곧 돋아나니 아예 제초제를 뿌리란다. 남들 마당이 시원스레 깨끗한 것은 다 농약 덕이지 그들이 바지런해서가 아니란다.
우도에선 산 밑의 뻘과 면한 조붓한 집에 살았다. 그곳은 ‘화엄의 바다’를 작업하기 위해 삼 년을 머문 곳이다. 간척사업으로 조수가 없어지자 바닷물이 닿는 지역에 염생식물이 자라고 뭍으론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마당 가장자리까지 올라온 갈대는 어른 키를 웃돌아 외부에서는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곳이었다. 한 번은 느지거니 아침을 먹고 마당 한켠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갈대숲을 헤집고 나타난 놈이 있었다. 노루였다. 맑은 눈망울과 쫑긋한 귓바퀴의 아기노루! 시선이 맞닥뜨리자 놈은 그 자리에서 사지가 굳고 말았다. 지척간이었다. 손을 뻗어 몽둥이를 들면 닿을 거리였다. 짐짓 시선을 거둬 딴전을 부리다 그곳을 보니 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또 한 번은 카메라를 챙겨들고 갈대숲을 헤치고 나가 만에 이르렀을 때였다. 붉은 염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널브러진 흰 조개껍질이 대조를 이뤄 묘한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붉은 것 속에 시선을 잡는 것이 있었다. 머리를 반짝 든 뭉툭한 뱀, 능구렁이였다. 이놈도 사람의 인기척에 미동조차 없었다. 문명의 이기에 따라 황폐해지는 건 비단 자연만은 아닌 듯싶다. 요즘 우리는 너무 요란하지 않은가? 인간은 문명을 버리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연을 떠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