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꽃시단] 천년나무에 등불을 걸다
김남권(1961 )
2025-11-25 충청투데이
그대를 보려고 천년을 걸어왔다
천태산을 가슴에 품고 걸어온 세월,
해마다 천 개의 잎을 피우고
천 개의 꽃을 피웠다
삼단 같은 머릿결 풀어헤친 폭포를 거슬러 내려온
문무왕 8년 원각대사의 부름을 받은
사슴신의 원력으로 지었다는 영국사를 지키려고
열두 폭 치마폭에 천년의 별빛을 쏟아놓았다
달빛의 언어로 심장은 붉어지고
대지의 언어로 나무는 많아졌다.
천태산의 새벽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밤새도록 새로 태어난 별빛들 걸어 내려와
천년나무의 숨결을 열어주었다
모든 정령들이 일어나 춤을 추는 시간,
바람도 숨죽이며 이슬을 깨우고
구름도 강물 속에서 비늘을 닫았다
보라, 천고의 목숨을
보라, 천년의 언어를
황금 깃발 펼럭이는 저 언덕을 넘어가면
피안의 문이 열리리라
다시 새 천년의 등불이 온 세상에 내 걸리리라
매년 가을 은행잎 은은하고 깊게 물들면 영동의 영국사 은행나무 주변으로 전국의 시인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구름처럼 몰려든다. 매년 가을 열리는 행사에 반가운 얼굴들 만나 서로의 기쁨을 부빈다. 그렇다. 이 가을 가기 전에 영국사 은행나무 어떻게 물드는가 와서 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영동문학관 옆으로 흐르는 금강 물결이 어떤 소리를 내며 흐르는지 들어야 하겠다. 영동에는 양산팔경의 풍치가 가을을 입고 눈부신 바, 그것들이 어떻게 가을을 펼치며 품어 안는지도 자세히 보아야 하겠다.
그대를 보려고 천년을 걸어왔다고 했다. 천태산을 가슴에 품고 걸어온 세월, 해마다 천 개의 잎을 피우고 천 개의 꽃을 피웠다고 했다. 하여 피안의 문이 열리리라 했으니. 다시 새 천년의 등불이 온 세상에 내 걸리리라고 한다. 은행나무 하나가 품은 가을빛은 천태산 열 개를 넘어 민주지산에도 가닿느니. 영동은 노란 은행나무 하나가 떠받친 세상의 기둥. 국악이 익고 문학이 익어서 가을의 절정을 구가하느니. 누구라도 가을이 오면 영동으로 오라. 이 가을 가기 전 영국사 은행나무가 어떻게 물들었나 와보아야 한다. 그리고 영동문학관 옆으로 흐르는 금강 물결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꼭 들어야 한다.
- 김완하(시인. 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