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배경 차별 없는 아산 만들기…이주아동 권리보호 맞머리
이주배경아동 지원체계 마련 정책토론회 교육·심리·사회적 격차 해소 방안 논의 출생미등록 아동 보호 제도 개선 촉구 지역 맞춤형 통합 지원 시스템 필요 강조 市, 다문화 아동권리 실현 선도 모델 기대
[충청투데이 김세영 기자] 한국은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 가입 이후 아동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34년이 지난 현재 아동 인권은 당시보다 크게 고양됐지만, 외국인부모를 둔 아동이나 미등록 아동 등 이주배경아동은 여전히 제도와 일상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역 내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음에도 언어·학습·정서·돌봄 등 기본 생활 여건조차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 이에 세이브더칠드런 중부지역본부와 충청투데이는 이주배경아동이 출신 배경과 관계없이 권리를 보장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토론회를 열고 지역 지원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편집자주>
세이브더칠드런 중부지부는 20일 충남 아산 온양원도심 문화복합시설에서 ‘아산시 이주배경아동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자리는 아산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이주배경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역 지원체계를 보완·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는 양계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아산시 이주배경아동 지원 현황과 과제’ 발제로 시작됐다.
이어 김영호 (재)아산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진행됐으며 각 분야 전문가들이 현장 문제와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발제를 맡은 양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배경아동을 하나의 단일 집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배경아동은 출생지, 부모의 결혼 유형 등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국내출생자와 국외출생자의 특성이 서로 다르고 국제결혼가정과 외국인가정이 다른 특성을 지닌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의 국내 장기 정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들의 귀국을 상정한 교육정책은 장기적으로 사회에 부담될 수 있다는 점이다"며 "실제 이주배경아동이 한국사회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지니고 있고 한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이주배경아동 역량강화를 지원해 장기적인 미래 인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양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이주배경아동의 사교육 경험, 4년제 대학 진학 등 희망교육 수준, 일상생활스트레스는 비이주배경아동의 평균 이상이다"며 "한국어의 문제가 이주배경아동 집단이 지닌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집단의 특성에 맞는 세부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심리사회적응 및 부모 등 가정환경요인에 대한 접근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주배경아동의 교육 및 심리사회적 격차 문제에 대한 구조적 위험도 제시됐다.
이어 "이주배경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원 정책은 UN 아동권리협약에 기반해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인구 감소 시대의 인적자원 확충 전략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책은 낙인 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통합을 명확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유연하고 통합적인 지원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한국어 능력 향상에만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고 사회적응과 가정환경에 대한 고려를 포함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생미등록 아동에 대한 제도적 대응도 이번 토론회에서 가장 절실한 과제 중 하나로 꼽혔다.
안소정 우리동네연구소 운영위원 "출생등록은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한 제도가 아니라, 모든 아동이 태어나는 순간 누려야 하는 기본 권리다. 그러나 현재 시행 중인 출생통보제는 국내아동을 대상으로 해 이주배경아동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주배경아동도 출생과 동시에 등록이 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법제화 전에는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한 출생확인증을 발급해 지자체 차원에서 아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흥시에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뒤 많은 아이들이 행정 지원과 정서적 도움을 받게 됐다"며 "아산에서도 관련 조례가 제정되면 이런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중앙정부 제도 개선을 요구할 근거를 쌓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현장에서도 미등록 이주배경아동의 현실을 전하며 제도의 빈틈을 지적했다.
이지영 충남이주여성상담소장은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출생등록·건강보험·돌봄 서비스 접근에서 계속 문턱에 부딪힌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하면 안 된다’고 배워 신고를 망설이는 학생도 있다. 정보 부족과 잘못된 인식이 아동을 2차 피해로 내모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국적 여부와 상관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속적인 정책 추진을 위한 전문인력 확보와 제도적 뒷받침에 대한 중요성도 떠올랐다.
한석희 충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 국제교육팀 장학관은 "충남도교육청에서는 모든 학생이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공존과 공영의 다우리 다문화교육’을 비전으로 다문화친화적인 교육환경을 만들고 학생들의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고 있다"며 "중도입국·외국인학생의 한국어교육과 통번역 수업보조인력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우즈베키스탄 교사교류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년 3월에는 공립형 대안학교 ‘충남다우리학교’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주배경아동을 단순히 배려받는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이주·비이주배경학생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통합적 교육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주배경학생 지원은 더 이상 특별한 정책이 아니라, 모든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는 교육의 본질적 과제다"며 "이주배경아동에 대한 정책이 지속되려면 결국 전문인력 확보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공감한다. 아산시가 지역 단위에서 이주배경아동 지원정책을 선도하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세영 기자 ksy@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