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작은 언어의 변화가 만드는 거대한 양성평등

박병호 충북도 부동산정보팀장

2025-11-11     충청투데이
▲ 박병호 충북도 부동산정보팀장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은 개인의 성향, 성별, 직업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일반 성인의 경우 하루 평균 약 1만 3000개의 단어를 말하며 문장으로 환산하면 약 1000~1600문장 정도가 된다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사고방식까지 영향을 끼치는 인간만의 고유한 도구로서 인류가 살아온 역사와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틀 속에서 여성은 ‘처·부·자(妻婦子)’의 역할에 묶여 있었고, 교육, 정치, 경제 영역에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았다. 이러한 틀은 제도과 관습으로 고착화되었고 남성이 ‘가족을 이끄는 주체’, 여성이 ‘가정을 돌보는 보조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은 집안에 머물고, 남성은 바깥일을 한다는 역할구조를 담당한다는 의미를 가진 ‘집사람’, ‘안사람’, ‘바깥사람’ 같은 표현으로 남아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은 광복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쳐 1948년 대한민국 헌법에 ‘남녀평등’을 명시하면서 여성들도 교육, 노동, 공적영역에 참여할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고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 통과 등 제도적 틀이 강화되면서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이 본격화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시기까지도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유교적 가족관계가 사회에 남아있어 ‘부(父)형(兄)’이 부모를 대표하는 말로 쓰이는 ‘학부형’이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되었고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직업이 성별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여교수’, ‘여의사’와 같은 성별 수식어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언어들은 2000년대 이후부터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 학계, 언론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연구와 정비를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온라인 영상 플랫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확산으로 ‘돌진남’, ‘알파녀’, ‘된장녀’ 등 특정 성별을 폄하하는 신조어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으며 취업, 경제, 사회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남성들은 "여성 우대 정책이 나를 차별한다"는 역차별론을 제기하는 등 과거 여권 신장에 집중했던 양성평등의 논의는 이제 성별 간 대립과 갈등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성별 간 서로 다른 경험과 인식을 어떻게 조화롭고 공감 가능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여정의 한 축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표현들을 돌아보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포용적이고 평등한 언어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고 양성평등의 출발점을 만들 수 있다. 비록 그 변화는 작아 보일지라도 그 작은 언어의 변화가 우리 사회의 성별 간 평등을 향한 거대한 물결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