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출연연,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플랫폼으로
김서균 ETRI책임연구원
2025-11-02 충청투데이
정부는 인공지능,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예고하고 있다. 초혁신경제 전환 속에서 출연연의 위상은 단순한 연구기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민과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도록 출연연은 국가전략기술 허브이자 기술사업화 플랫폼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지금까지 출연연은 학술 성과에서 세계적 수준을 달성했으나, 정작 산업계가 원하는 것은 시장에 적용되는 기술과 사업화가 가능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기술이전료라는 단일 지표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규모는 제한적이다. 실제 제품·서비스로 이어지는 전환율이 낮다 보니 투자 대비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 기획과 공동 투자 모델을 확산해야 한다. 국가전략기술 과제를 출연연 단독 수행으로 기획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업과 대학, 투자기관이 초기 단계부터 함께 참여해 과제를 공동 설계하고 리스크를 나눠야 한다. 더 나아가 벤처캐피털과 공동 펀드를 조성해 연구-투자-사업화가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기술이전이 아니라 공동 지분 참여, 합작법인 설립, 스타트업과의 공동 개발 등 다양한 사업화 모델이 활성화될 수 있다.
둘째, 스케일업과 실증 중심의 사업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출연연 성과는 초기 실험실 단계(PoC)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시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각 출연연이 지역혁신거점과 연계해 실증·사업화 허브를 운영한다면 기업은 기술 검증뿐만 아니라 사업 확장 기회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바이오 분야처럼 대규모 인프라와 초기 비용이 필요한 영역에서는 공공-민간 공동 실증 인프라가 기업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다.
넷째, 성과 지표의 전환도 필요하다. 기존의 산출(Output) 위주 관리에서 벗어나 Outcome과 Impact 중심으로 지표를 전환해야 한다.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했는지, 사회문제 해결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쳤는지가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또한 성과지표에는 기술이전 건수뿐 아니라 사업화 전환율, 민간 매칭 투자 규모, 스핀오프 창업 건수, 글로벌 시장 진출 성과 등이 포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력과 제도의 혁신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성과와 역량에 기반한 유연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출연연-대학-기업 간 순환형 인력 교류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연구자가 행정·재원 확보 업무에 과도하게 매몰되지 않도록 전문 연구지원 인력을 대폭 확충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진정한 성과가 나온다.
결국 출연연은 정부가 원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을 넘어, ‘국가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기술을 시장과 산업으로 연결하는 허브’로 진화해야 한다. 기업에게 출연연은 리스크를 줄이고 성장 기회를 넓히는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으며, 투자자에게는 안정적 기술 기반과 공공 신뢰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출연연 혁신의 결정적 시점이다. 연구성과를 숫자로만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국민과 산업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연구의 언어를 산업의 언어로 변환하고, 시장의 속도에 맞춰 기술을 전환하는 기관으로 혁신할 때, 출연연은 대한민국 혁신경제의 핵심 허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