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춘추] 대전의 밤, ‘빛나는 도시’가 되려면
이창기 대전디자인진흥원장
2025-10-30 충청투데이
‘잠들지 않는 대전, 꺼지지 않는 재미’라는 주제로 열렸던 0시축제가 8월의 한여름밤을 달궜다. 그야말로 도시의 낮이 행정과 산업의 질서를 상징한다면, 밤은 문화와 체험의 무대다. 세계 주요도시들은 이미 이 사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파리와 리옹은 역사적 건축물에 조명을 더해 ‘밤의 예술’을 완성했고, 싱가포르는 지역별 테마 연출로 장소의 개성을 극대화했다. 뉴욕은 ‘24시간 문화도시’를 내세워 심야 상권과 공연문화를 정책적으로 연결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강력한 거버넌스, 그리고 체류형 경험을 통한 경제활성화다. 야간경관은 단순히 불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경제·사회적 흐름을 설계하는 정책이며, 공공디자인의 핵심의제다.
대전도 잠재력은 충분하다. 엑스포다리와 대전천변은 수변경관과 빛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야간산책코스다. 한빛탑 일대는 미디어파사드와 조명쇼로 과학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 대동하늘공원과 오월드 전망대는 도심야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 손꼽히며, 으능정이거리와 중앙시장 일대는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빛의 거리’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유성온천거리, 갑천변 자전거길, 대청호반을 연계한다면, 휴식과 체험이 결합된 야간관광루트로 발전시킬 수 있다. 최근에 대전시와 대전디자인진흥원이 추진하는 야간교량경관 마스터플랜이 수립되면 스토리가 있는 야간교량경관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대전이 ‘머무는 도시’로 거듭나려면, 야간경관을 단편적 이벤트가 아닌 도시정책의 핵심축으로 통합해야 한다. 우선 시 전반의 야간환경을 총괄할 전담 조직, 즉 ‘야간경관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부서별로 흩어진 조명·문화·안전 정책을 하나의 전략 아래 통합해야 한다. 더불어 대전의 정체성인 과학과 문화를 야간경관에 녹여야 한다. 미디어아트, 드론 라이트쇼 등 과학도시 이미지를 살린 실험적 프로그램과 원도심 역사자원을 활용한 야간투어는 대전만의 독창성을 만들 것이다. 지역경제와 연계된 심야 상권육성도 중요하다. 전통시장 야간장터, 청년공방의 골목형 콘텐츠는 지역자원의 선순환을 이끌 수 있다.
결국 대전이 ‘살기 좋은 도시’를 넘어 ‘머무를 만한 도시’로 도약하려면, 야간경관을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공디자인은 공간·제도·사람이 맞물릴 때 완성된다. 야간경관은 이 관계를 가장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다. 낮에는 과학의 도시로, 밤에는 문화의 도시로 빛나는 대전-그때 비로소 대전은 진정한 의미의 ‘빛나는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