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의원 공약 제도화와 新 검증 시스템의 필요성 [공약해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2025-10-30     조사무엘 기자

[충청투데이 조사무엘·권오선·이석준·최광현 기자] 충청투데이 ‘C-인사이드’ 팀은 이번 ‘충청 광역의원 공약 해부’의 일환으로 지역 정치의 구조적 문제 진단과 실질적 개선 방향 모색을 위해 관련 전문가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방의회 공약이 단순히 ‘약속의 목록’이 아니라 정책으로서 실현되고 평가받는 과정을 어떻게 제도화할 수 있는지, 또 어떤 시스템을 접목해야 할지를 중심으로 다뤘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특정 분야 쏠림, 공약의 실현 가능성 등을 지적하며 새로운 공약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지방의회의 핵심 한계로 공약 검증 체계의 부재를 꼽고 공약관리 전담조직 신설과 데이터 기반 평가시스템 도입 등 제도적 보완점을 제시했다. 

"공약, 예산 확보 가능성 따져 과감한 철회·수정 필요"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원장은 "임기 말 공약 검증만으로는 의미가 크지 않다"며 "선거 시기, 임기 초반, 임기 말의 3단계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육 원장은 "임기 말에 공약 이행 여부만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며 "민선 출범 이후 어떤 성과를 냈는지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 당시 제시한 공약이 현실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육 원장은 "선거 때는 그럴듯해 보였던 공약도 막상 임기가 시작되면 재정이나 여건상 실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그럴 땐 공약을 어떻게 수정·보완해서 추진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지켰다, 안 지켰다’로 판단하는 방식도 재고가 필요하다.

그는 "무리한 공약임을 깨닫고 스스로 수정하거나 포기한 경우도 있는데, 그런 판단이 적절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약을 어떻게 다듬었고, 그 결과가 얼마나 실현됐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가 제시한 첫 번째 단계는 선거 시기의 검증이다.

"선거 때 공약과 정책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다른 기준으로 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애초에 공약을 제대로 검증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은 임기 초반 검증이다.

그는 "민선 출범 직후 인수위 단계에서 공약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정책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실행 가능성과 예산 확보 가능성을 따져보고 문제가 있는 공약은 과감히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고 되짚었다.

그는 "우리는 이 과정을 건너뛰고 공약이 그대로 정책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면 엉뚱한 공약이 정책화돼서 행정력만 낭비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비난을 위한 게 아니라 공약이 제대로 된 정책으로 만들어지도록 돕는 과정"이라며 "출범 초기에 실행 가능성과 재정 지원 가능성을 따져봐야 나중에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약 이행률, 보고의 착시… 공약 검증 체계 허술"

권선필 목원대학교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공약이 특정 분야로 쏠린 부분을 지적했다.


권 교수는 "대전·세종·충남 모두 건설·교통·인프라 분야가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며 "이런 수치는 단순히 ‘토건정치’의 잔재라고 해석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을 짚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권 교수는 이런 현상이 단순한 정치 관성의 결과가 아닌 제도적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방의회가 중앙정부 예산 구조에 종속돼 있고, 지역민의 요구가 ‘생활 개선’보단 ‘시설 확충’으로 번역되는 정치문화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며 "성과를 보여줘야 정치적 생존이 가능하다는 의원들의 생리와 우리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 교수는 지방의회 공약 검증 체계의 허술함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의원들이 제출한 공약 이행률 보고서상 수치는 평균 70%를 넘지만, 실제 예산 집행이나 착수 데이터를 대조하면 50% 수준으로 떨어지는 ‘보고의 착시’가 나타난다"며 "이런 착시는 지방의회 내 검증 체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의원의 자율적 보고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지방의회 내 ‘공약평가팀’ 신설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는 임기 종료 후 형식적 ‘성과보고회’로 끝난다"며 "지방의회 사무처 내에 공약관리 전담팀을 신설해 의정활동 평가와 연계해 정당별, 분야별, 지역별 등으로 어떤 공약이 있는지 쉽게 볼 수 있도록 ‘정책 포트폴리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책 평가 방식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단순한 이행률보단 정책 효과성, 주민 만족도, 지역 파급력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AI 기반 데이터 분석이 도입된다면 정치가 아닌 ‘증거와 수치로 말하는 정치’로 전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시민 참여형 검증 구조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권 교수는 "시민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약 이행 상황을 평가하고, 지역별 현황을 시각화한다면 지방정치는 ‘정치인의 언어’가 아닌 ‘주민의 언어’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한다면 충청권 지방의회가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의원들 예산 편성권 없어 선심성 공약 多"

최호택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의원들은 예산 편성권이 없어 공약을 지킬 수 있는 구조 자체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산을 심의하는 역할만 할 뿐, 시설 건설이나 사업 유치 같은 공약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조례를 만들어 정책을 추진하는 정도"라며 "건설이나 복지 관련 공약들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런 공약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매력을 보일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검증되지 않은 공약 양산으로 예상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최 교수는 "의원들의 공약은 본인이 그냥 낸 것일 뿐 누군가에게 검증받은 것이 아니다"며 "관련 토론도 없고 선거 국면에서는 주장만 있을 뿐"이라며 "대부분의 공약이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선심성 공약이 많다"고 꼬집었다.

지자체장의 경우 인수위원회를 통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집행하는 반면, 지방의회 의원들에게는 그런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최 교수는 "의원에게는 자기 권한 내의 지역 할당 예산이 있다"며 "1년에 5000만원 정도의 예산으로 동네의 작은 사업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공약에 나와 있는 거창한 사업들은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공약 검증 시스템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단 공약 단계에서 그것이 지방의회 의원의 공약으로 합당한 것인지,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당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공천할 때 공약의 신빙성과 재선의 경우 얼마나 실현했는지를 자체적으로 평가해서 다음 공천 때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시민 참여를 통한 감시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최 교수는 "지자체의 경우 의회에서 예산이나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모든 것을 검증하는데, 의회의 경우에는 검증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현재도 의정 참여 감시단 같은 것들이 자치단체마다 있기는 하지만, 이를 확대해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지방의회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집행 공약 남발… 지방의원 역할 재정립 핵심"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지방의회의 본래 역할이 있음에도 집행 공약을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것을 구조적 한계로 지목했다.


설 팀장은 "지방의원은 집행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역할이 있지만 실제로는 지자체장이 추진해야 할 집행 공약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며 "집행부 견제의 역할과 집행의 역할을 혼동해 나온 공약들은 곧바로 시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의지가 있다고 해서 진행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집행기관을 견제해야 하는 지방의원이 정작 사업 집행 공약을 남발하며 단체장의 공약과 구분할 수 없게 된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규모 건설 사업에서 의원의 역할은 추진 자체가 아닌 세금 낭비나 안전 문제를 점검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라며 "단체장들의 공약처럼 ‘조속 완공’을 내세우는 것은 의원 역할의 본질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또 지방의원에 공약 이행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로 짚었다.

이에 대해서 그는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보좌관이 공약 관리를 일정 부분 해주다 보니 공약 관리에 유리하다"며 "지방의원도 마찬가지로 관련한 제도적 장치를 확대해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공약 생성 단계에 있어서 핵심은 지역 정당의 전략적 역할이라고 지목했다.

설 팀장은 지역 정당의 역할에 대해 "시민사회 차원에서 나오는 정책들을 지역 정당이 공론장을 통해 공약화하면 지역 친화적인 공약이 나올 수 있다"며 "시민과 후보가 같이 공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무엘·권오선·이석준·최광현 기자 samue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