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대응은 국가, 범죄예방은 자치…실현 가능한 세종형 분권 모델 ‘급부상’
[지역 대표신문 2개사 공동기획] 지방분권 실현의 첫단추 ‘자치경찰제’ ② ‘반쪽’ 꼬리표 떼나… 이원화 전환 본격화 李 정부 국정과제 ‘자치경찰제 시행’ 경찰청, 세종형 모델 시범모델로 보고 현행 인력·청사만으로 즉시 적용 가능 신고 대응시간 5~10분 단축 효과 기대 법·제도 보완, 재정분권 확대 등 과제
[충청투데이 조사무엘·함성곤·경기일보 김도균 기자] 반쪽짜리 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온 자치경찰제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정부가 국정과제에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을 명시하고 구체적 로드맵을 손질하는 등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면서다.
자치경찰제 논의는 이재명 정부가 검찰개혁 기조를 강화하는 흐름과 맞물려 재부상됐다.
검찰개혁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될 경우, 경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견제 방안의 하나로 자치경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경찰 권력 집중 문제는 자치경찰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언급했다.
자치경찰제는 크게 일원화 모형과 이원화 모형으로 나뉜다.
일원화는 국가 또는 지방 중 한 곳이 인사·조직을 통제하고 기능을 일부 분리하는 방식이며, 이원화는 국가와 지방이 각각 독립적으로 경찰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현재 한국은 국가경찰 중심의 ‘절충형 자치경찰제’를 운영 중이다.
앞서 2020년 경찰법 개정에 따른 자치경찰제가 시행되면서 경찰사무를 국가사무, 수사사무, 자치사무로 구분했다.
국가사무는 경찰청장이 수사사무는 국가수사본부가, 자치사무는 자치경찰위원회가 각각 지휘하도록 한 것이다.
이 중 자치경찰은 전체 경찰 사무 중 지역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생활안전, 교통, 지역경비 분야 사무를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하는 제도다.
원칙적으로는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지역 경찰청을 지휘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현재 정부 논의는 이원화 모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집권형 경찰체계에서 벗어나 국가경찰은 광역·중대범죄 대응에, 자치경찰은 지역 생활치안에 집중하는 이원화 구조로의 전환이 정부 개편 방향의 핵심이다.
이는 경찰 조직 운영 방식은 물론, 국가 권력 배분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제도 변화다.
실제 개편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공약에 담았던 ‘경찰의 민주적 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경찰국 폐지 절차를 진행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8월 4일 직제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이어 8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 8월 26일에는 공포·시행을 통해 경찰국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경찰국 폐지와 함께 정부는 국가경찰위원회의 심의·의결 기능을 강화해 권한 조정과 정책 조율을 맡기고, 국가경찰의 권한을 단계적으로 자치경찰로 이양하는 방안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추진체계도 만들어지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9월 15일 자치경찰제 추진 전담조직인 ‘자치경찰기획단’ 설치 계획을 국가경찰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의결했다.
기획단은 경무관급 단장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총경 2과, 경정 3계, 20여 명의 인력으로 구성해 자치경찰 시범사업 설계, 기능 이관 범위 확정, 조직 운영 모델 수립 등을 담당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21일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자치경찰제 확대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했다.
그는 "민생 경찰, 민주 경찰을 넘어 스마트 경찰로 나아가겠다"며 "마약, 보이스피싱, 딥페이크 등 신종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치안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자치경찰제는 이미 한 차례 도입을 거쳐 정착을 시도했지만, 실질적 권한 이양과 제도적 설계 미비로 ‘반쪽짜리’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제 정부가 전면 시행을 공식화한 만큼, 자치경찰은 다시 한번 제도 전환의 변곡점에 서 있다.
향후 시범사업의 설계와 입법·재정 정비, 중앙과 지방 간 권한 재배치가 그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 ‘현실적 이원화 모델’…세종형 자치경찰이 주목받는 이유
국가 사무와 지역 업무를 분리해 현실적인 이원화 모델로 꼽히는 ‘세종형 자치경찰’이 주목 받고 있다.
정부가 자치경찰제 재정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행 인력과 청사만으로 즉시 적용 가능한 현실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형 자치경찰 모델은 김흥주 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과 세종경찰청의 지역경찰을 담당하는 실무 경찰관이 함께 설계한 모델로, 최근 경찰청이 국정기획위원회에 자치경찰 도입 모델로 보고한 바 있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자치경찰은 제도를 다시 설계하기보다 작동 가능한 모델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단일국가 구조 속에서 실제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 ‘작동 가능한 분권모델’을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핵심은 ‘신고 대응(국가)’과 ‘범죄 예방(자치)’의 기능 분업이다. 112 신고 접수·지령·출동 등은 국가경찰이 일원화해 속도와 통일성을 확보하고, 생활범죄 예방·취약계층 보호·지역문제 해결 등은 자치경찰이 맡아 지역밀착성을 높이는 구조다.
김 연구위원은 "신고는 국가, 예방은 자치라는 원칙이 세종형의 뼈대"라며 "현 인력과 제도 틀 안에서도 충분히 가동 가능한 현실적 설계"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모델이 등장한 배경에는 현행 자치경찰제가 ‘이름뿐인 제도’로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112 통합운영 이후 일선 경찰의 업무가 신고 대응에 과도하게 쏠리면서, 순찰·예방 등 지역밀착 치안이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현장 안팎에서 이어져 왔다.
지금의 일선 경찰은 112 출동에 매몰돼 주민과의 관계 형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치경찰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역할을 명확히 나누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 전문가들과 경찰 안팎에서의 평가다.
세종형 모델의 실행안은 공간과 조직 재배치에서 출발한다.
우선 세종시를 기준으로 남부권에 위치한 청사지구대를 거점 삼아 국가경찰의 ‘광역 112 대응단’을 두고, 인근 지구대·파출소는 ‘커뮤니티 경찰센터’로 전환해 자치 기능의 허브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광역대응단은 긴급출동 전담조직으로 운영돼 환상형(BRT) 도로망을 따라 권역을 순환하며, 커뮤니티 센터는 자전거·도보 순찰 등 생활밀착형 예방치안을 전담한다.
김 연구위원은 "세종형의 장점은 ‘즉시성’에 있다"며 "새 청사를 짓거나 인력을 늘리지 않아도 기존 청사 리모델링과 배치조정만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설계안에는 도담동 청사지구대를 중심으로 순찰차 10대, 4조2교대 기준 1개 조당 27명을 배치하는 구체적 인력 운영안도 담겼다.
이 같은 구조를 통해 신고 후 초동 대응시간을 5~10분 이내로 줄이고, 동시에 예방순찰·생활치안 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목표다.
커뮤니티 경찰센터는 경찰과 주민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형 거점’으로 설계됐다.
센터 1층은 예방순찰·생활질서 대응 기능을 두고, 2층에는 자율방범대·여성·청소년·자살예방센터 등 민관 파트너 기관이 입주해 상시 협업할 수 있게 하는 등 범죄예방이 단독 업무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와의 연계 속에서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는 "한 지붕 아래에서 협력체계를 상시화하는 것이 세종형 자치경찰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예산과 인력은 ‘순증 없는 재배치’를 전제로 한다. 초기에는 현 인력 조정만으로도 가동할 수 있고, 이후 단계에서는 필요에 따라 무인단속 과태료 등 교통질서 관련 세수를 자치단체에 귀속시켜 재원을 확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김 연구위원은 "자치경찰의 성패는 결국 재정분권에 달려 있다"며 "과태료나 교통단속 수입의 일부를 지역이 환원받아 인력 양성과 장비 확충에 재투자할 수 있어야 제도가 굴러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한계점도 존재한다. 시범 모델의 확산 전략이 세종시에 그쳐있기 때문.
세종형은 전국 보편모델이 아니라 신도심으로 이뤄진 세종의 구조에 최적화된 모델로 설계돼 있다.
세종은 신도시 중심의 균질한 도로망, 비교적 넓은 청사 면적 등 지역적 여건이 뒷받침 되고 있지만, 이를 전국 기준으로 통일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마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해당 모델이 세종을 기준으로 설계했지만, 자치경찰이 ‘지역에 맞는 치안을 구성’하는 역할인 만큼, 지역 내부에서도 같은 구조로 구성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법과 제도적 보완도 필수적이다. 112 대응 기능을 국가에 두되, 자치경찰위원회가 국가·자치 간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제안이다.
여청·생활질서·사고조사 등 생활밀착 수사영역은 ‘자치경찰본부’ 형태의 외청으로 두고 점진적 이관을 검토한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세종형은 현실성이 높다는 평가다. 미국 주요 대도시의 전면 자치경찰제는 연방제 기반에서나 가능한 구조며, 일본도 기초단위 자치경찰을 도입했다가 혼선 끝에 중앙 통합으로 회귀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는 연방제가 아니다. 제도보다 현실적인 작동 여부가 중요하다"며 "현실의 제약을 인정한 채 작게 시작해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세종형 모델이 자치경찰의 ‘현장 복귀’를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신고 중심의 치안 구조에서 벗어나 예방·공동체 중심으로 재편되면, 주민 체감안전도가 실질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다.
김 연구위원은 "이상적인 제도보다 중요한 건 작동하는 제도"라며 "세종형이 자치경찰제의 현실적 해법이자, 전국적 확산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충청투데이 조사무엘·함성곤·경기일보 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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