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소만 옮긴 게 아니다, 연산대추축제의 품격이 달라졌다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올해로 24회를 맞은 ‘2025 연산대추문화축제’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3만 3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축제를 단순히 ‘많은 인파가 몰린 축제’로 평가하기엔 아쉽다.
이번 연산대추문화축제는 단순히 장소를 옮긴 행사가 아니라, 지역문화의 품격과 방향을 완전히 바꾼 분기점이었다. 올해 축제의 가장 큰 변화는 공간이다. 그동안 열리던 연산시장 일대의 비좁고 혼잡한 골목을 벗어나, 연산문화창고·연산별당·연산면사무소·연산역 일대로 무대를 옮겼다. 결과는 분명했다. 질서 있고 쾌적한 공간, 충분한 주차시설, 안전을 고려한 구조 덕분에 방문객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무엇보다 지역 축제가 가져야 할 기본 원칙, “품격 있는 공간이 품격 있는 문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연산문화창고의 활용이다.
소설가 김홍신의 북콘서트, ‘5개의 팔레트’ 전시회,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술·풍선·솜사탕 공연이 이어졌다. 그동안 단순한 먹거리 중심으로 흐르던 축제에 문화적 깊이와 예술적 감수성을 불어넣은 첫 시도였다. 현장을 찾은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품격 있는 문화공간의 활용이 인상 깊었다”고 말한 것도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다. 지방의 축제도, 지방의 문화공간도 충분히 수준 높은 콘텐츠를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대추열차’ 운행은 이번 축제의 또 다른 혁신이었다.
연산역과 연계된 관광열차를 통해 수도권 관광객 90여 명이 매일 연산을 찾았고, 이들은 대추축제뿐 아니라 세계유산 돈암서원, 탑정저수지 등 논산의 대표 명소를 함께 둘러보았다. 축제와 관광, 그리고 지역경제가 맞물린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셈이다. 저녁이면 관광객들이 연산시장 식당을 찾으며 지역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것이야말로 행정이 주도하고 시민이 참여한 ‘살아있는 지역경제형 축제’의 모델이다.
올해 축제는 안전성 면에서도 한층 진화했다. 정부의 행사안전지침을 충실히 반영한 공간 설계와 운영 체계는, 지역행사가 가져야 할 책임의식을 보여줬다. 더 이상 “재래시장 중심의 복잡한 축제”가 아니라, 질서와 품격이 공존하는 문화행사로 거듭난 것이다.
백성현 시장(논산문화관광재단 이사장)은 “이제는 대추만의 축제가 아니라, 연산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녹여내는 진정한 문화축제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단순한 포부가 아니라, 향후 논산시 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 선언에 가깝다.
연산은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은 역사 도시이자, 돈암서원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품은 곳이다. 이런 자원을 하나의 축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엮어낼 때, 비로소 축제는 ‘이벤트’가 아닌 ‘지역 브랜드’로 승화된다. 결국 이번 연산대추문화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장소 이전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철학을 바꾼 사건’이다. 지역 축제는 더 이상 먹거리와 공연의 나열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시민이 자부심을 느끼고, 도시의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연산이 이번 축제를 통해 보여준 변화는 충남 지역문화정책의 새로운 이정표다. 지방의 축제도 충분히 품격 있고, 전국에 내놓을 만한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일회성 성과가 아니라, 그 변화의 철학을 어떻게 이어가느냐다.
연산의 실험이 논산을 넘어 충남 문화행정의 모델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